광내면 죽는다
광내면 죽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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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학교 EU연구소 소장, 건축학과 교수)
빛과 관련된 대표적 비속어로는 ‘때 빼고 광내다’는 말이 있다. 이는 평소 초라하고 구질구질한 사람이 갑자기 말끔하게 차려입고, 심지어 구두나 머리까지도 번들거릴 정도로 단장하여 멋을 부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다 보니 졸지에 때 빼고 광낸 사람은 거들먹거리기가 쉽고 이를 보다 못한 사람들이 ‘광내다 죽는다’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사실 정결하게 하고 광을 내서 나쁜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벼락부자가 되었거나 떼 출세를 했다고 하여 거들먹거리게 되면 주위로부터의 시선이 고울 리는 없는 것이다. 광이 난다는 것은 표면이 빛을 잘 반사한다는 뜻이고, 잘 닦은 구두처럼 재료표면이 매끄럽게 되어 있으면 더 빛이 나 보인다. 이 때문에 광내기 위해서는 빛에 나가 자신을 드러내야 하니 이것이 마치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공기처럼 항상 있는 것이어서 예사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빛이 없으면 생물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며 주위환경을 볼 수도 없다. 특히 우리는 빛과 눈의 상호작용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획득함으로 빛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빛이 이처럼 좋은 것이다 보니 여러 종교에서는 이를 매우 숭상하며 심지어 신과 같은 위치에 놓기도 한다.

횃불, 초롱불, 모닥불 등은 그 밝기나 지속시간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과거에는 태양이 유일한 빛의 근원이었다. 따라서 어두운 밤의 활동과 안전성을 답보하기가 어려웠고, 이 때문에 통행금지가 실시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전기의 발명으로 인공조명이 급속도로 발달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급변하였다. 특히 도시에서는 야간에도 마치 낮처럼 밝게 불이 켜졌고 쾌적하고 안전한 정주환경이 제공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조명이 가지는 조절의 용이함과 연출효과를 이용하여 도시를 매력적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이는 도시 경쟁력과 마케팅 효과의 상승 수단으로 급부상했고 홍콩, 파리, 리용처럼 빛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도시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특히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도시를 때 빼고 광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지자체들이 경관조명 사업이나 빛 축제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빛은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하는 법이다. 과도하거나 제대로 조절되지 못한 빛은 눈부심 등을 통해 사물을 보지 못하게 하며 심리적 스트레스까지 가져다 준다. 심지어 빛은 고문의 도구로도 사용되는데 백열등만 눈앞에 가까이 가져다 놓아도 잠을 방해할 수가 있고 지속하면 정신착란까지도 야기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상업광고로 자기 가게나 회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극심한 밝기의 빛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전광판 등을 사용한 동영상 발광 광고를 도시의 주요한 곳에 설치하여 시민의 안전과 경관을 해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많은 지자체들이 야간 경관을 위해 강이나 숲을 무분별하게 조명하여 자연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가로등, 보안등, 대형 건축물 및 아파트 등의 경관조명이 난반사를 일으켜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인류의 이기였던 인공조명이 도리어 사람과 자연을 훼손하는 무기로 둔갑하였고 신종 공해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최근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서울시의 경우 이미 수년 전부터 빛 공해 방지 조례와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어 빛을 적절하게 규제해 왔다. 하지만 정작 청정도시를 유지해야 할 지방에서는 아직도 과도한 빛을 만들어가는 오류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다. 이미 늦기는 했으나 지금이라도 과도한 상업광고 조명, 가로등, 건물조명, 경관조명 등으로부터 도시민을 지킬 구체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촌에서는 괜히 광내고 다니다가 죽는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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