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왜곡된 근로계층 '비정규직'
우리시대의 왜곡된 근로계층 '비정규직'
  • 경남일보
  • 승인 201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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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근 (울산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
A씨는 로펌의 1년차 계약직원이다. 그는 얼마 전 설 선물로 치약·비누 선물세트를 받았다. 정규직 직원들은 과일·곶감·굴비 중에서 선물을 골랐다고 한다. “이런 차이구나, 새삼 느꼈어요. 나 같은 사람(비정규직)은 선택의 여지가 없고, 정규직은 선택할 수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흔히들 하늘과 땅의 차이에 비유되곤 한다. 업무의 중요도나 경중에 차이가 없는데, 실제 급여수준이나 복지혜택에서 너무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나타난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인간 존엄성,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소외감 속에서 온갖 차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능력과 경력에 의한 차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차이를 넘어 차별의 문제라면 이는 심각하다. 비정규직의 연원을 살펴보자.

20세기말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상황에서 서구 선진국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미국의 대응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영미 국가는 복지 지출을 축소하고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을 줄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낮은 수준이지만 실업률은 줄고 경제는 안정되었으나 국민들의 생활은 좋아지지 않았다. 즉 새롭게 생긴 일자리는 안정된 정규직이 아니라 고용기간이 불안정하고 임금수준이 낮은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어서 소득수준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득격차가 점차 커지는 양극화 현상과 일을 하면서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로운 빈곤문제, 즉 근로빈곤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7년 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관계법을 개정함으로써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졌다.

그러면 우리나라 비정규직(공·사조직을 막론한 각종 임시직, 계약직, 기간제, 시간제 근로자)의 실태는 어떠한가. 2012년 8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약 591만 명으로 정규직 근로자(약 1180만 명)의 약 절반인 49.99%에 이른다.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항상 고용불안과 저임금 상황에 노출돼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은 137만 7000원으로 정규직의 277만원에 비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비정규직)와 나(정규직)는 다르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상대(비정규직)는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할 때 이렇게 대했을까. 아니면, 인간이 동물을 대할 때 이렇게 대할까.

/울산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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