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란 (경상대 사범대부설고 교사, 시인)
명의 숭정제는 결국 이 공원의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했고, 영화 ‘마지막 황제’ 에서 저 자금성의 북문으로 빠져 나간 푸이는 총을 겨눈 일본군 사이에서 황급히 차에 올라 만주로 떠났다. 그리고 일본군은 푸이에게 새로운 만주국의 황제를 꿈꾸게 했고, 푸이는 일본군의 철저한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황후는 일찍 그 진위를 알고 만류했으나 권력에 눈이 먼 푸이는 깨닫지 못했다. 그의 어리석음으로 황후는 아편중독자가 되고 그녀의 삶은 추락했다. 푸이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연암 박지원은 8월 1일자 열하일기에서 북경에 도착한 후 황성에 대한 기문을 썼다. 성인 창시론과 우인 계승론을 논하며 당시 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청 왕조를 우인(愚人)이라 했다. 성인과 우인의 차이점은 도덕성이다. 우인이 이 때문에 후세의 비난을 받았지만 연암은 오히려 이들도 백성들의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한 것이 흥미롭게 읽힌다. 연암이 청을 바라보는 관점은 진보적이고 계몽적이다. 그런데 우인 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연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공부란 인생의 오묘한 비밀에 접촉하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고 시들하던 공부에 생기를 찾은 적이 있다. 우인이지만, 우인이지 않은 이 미묘한 역설(逆說)이 역설(力說)같아 연암선생이 말한 우인을 잿빛으로 경계가 없는 경산 공원 위에서 다시 더듬는다. 자본주의의 물결에 몸을 푼 중국은 여전히 국제적 메카니즘의 중심에 서 있고 야누스같은 세월에도 저 자금성은 오늘을 주목하고 있다. 내일의 어제가 오늘인 것만은 분명한 현실에서 우인(愚人)의 길은 나에게 또 다른 사색을 요구한다. 운명을 다했기에 새로 구입한 4G 휴대폰의 덮개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말이다.
/경상대사범대부설고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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