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속의 에콜로지(Ecology)
보자기속의 에콜로지(Ecology)
  • 경남일보
  • 승인 201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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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대량생산·소비되는 물질만능의 현대를 폐기문화시대라고 한다. 산업폐기물이란 자연을 가공해 쓸 물건으로 만든 뒤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받아들일 수 없게 그냥 방치된 것을 말한다. 즉 폐기물이란 다시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약탈된 자연의 가공물인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자연이 그와 함께 썩는다.

폐기물은 외부의 자연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내부 자연도 훼손시키며 더 나아가 인간자신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자연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인간의 심성이 자연 그 자체인 인간을 존중할 리 없으며, 자연으로부터 다시 삶의 원료를 얻어야 할 인간의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자연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 사회는 성찰과 더불어 실천적 노력 없이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실제 노력을 통해서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이다. 청정했던 오랜 자연의 미래를 다시 실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산업을 불평등하게 이용하는 자본과 싸워야 하고, 편리성과 풍요에 길들여져 있는 자신의 욕망과도 싸워야 한다.

21세기 자원고갈과 환경이 중시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회자되는 심층생태론, 사회생태론 등 서양의 대안들을 떠올려 본다. 절약과 지속가능, 공존과 조화의 개념이 중요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는 이때, 우리의 철학을 찾아보자. 보자기의 철학 말이다. 보자기가 지닌 오래된 미래의 철학으로서 천연, 재활용, 재사용의 성격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첫째, 보자기는 자연의 자원을 약탈하거나 훼손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삼이라는 나무를 심고 길러서 수확한 천연의 재료로 만든다. 이 천연의 재료를 더 이상 가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콜릿을 담는 플라스틱 용기에 천연보자기를 접목시켜 보자. 천연녹말을 사용한 웨이프(wafer)용기를 개발해 초콜릿을 담는 것은 물론이고 먹을 수도 있게 만들자. 마치 쌀로 만든 이쑤시개와 같다. 이는 수많은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의 보자기는 낡아 더 이상의 기능을 보장받지 못하면 활용방식에 따라 걸레가 될 수 있고, 책상의 낮은 다리를 괴는 지지대로, 때로는 특성에 따라 끈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보자기는 보자기의 형태와 기능을 모두 접고 완전하게 다른 방식으로 재활용됐던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유팩을 재활용해 물티슈나 화장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 물티슈나 화장지뿐이겠는가. 종이의 호환성 혹은 재활용성은 보자기의 철학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셋째, 보부상들이 처음 장사를 할 때 보따리는 복을 불러온다는 기복신앙 때문에 해져도 버리지 않고 덧대어 수백·수천 번을 사용했다. 큰 물건을 수용할 때는 끈을 잇고, 작은 물건을 수용할 때는 접어서 사용했다. 이런 가치를 도입한 독일 슈퍼마켓에서는 자동 우유디스펜스를 사용해 리필운동을 하고 있다. 우유를 마시고 나면 병속을 깨끗이 씻어 사용횟수에 제한 없이 고객은 그 병에 우유를 다시 사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다한 우유병이 다시 회수돼 재사용된다.

작금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삶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환경이란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세계민 모두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자기는 잣알만한 크기의 조각 천에서부터 손바닥만한 크기까지 그 사용가치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됐다. 수백·수천 번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 보자기의 에콜로지 철학은 엔트로피(entropy)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보자기는 일심(一心)의 사유와 진속불이(眞俗不二)가 결합된 생태의 가치를 담고 있다. 자연이 인간이고 인간이 자연이라는 것이다. 형태가 내용이고 내용이 형태인 것이다. 한 장의 비닐봉투가 땅속에서 완전히 분해되기 위해서는 수백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비닐봉투는 자연과 일심의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고갈을 앞두고 우리의 보자기를 생각하자. 그 생태학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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