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봉양과 삼대 교육
부모 봉양과 삼대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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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1931년 작가 염상섭은 조선일보에 그의 대표작 ‘삼대(三代)’를 연재했는데, 조의관과 상훈, 덕기로 이어지는 세 세대에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서울의 중류계층의 대가족 재산다툼을 중심으로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루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는데, 그 중에서도 조부 조의관의 권위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회 가족구성은 소설 ‘삼대’처럼 대가족 중심제만은 아니었다. 이 대가족제 구성은 지체가 높으면서도 부유한 몇몇 집안에 한정됐는데, 이들 집안에서는 대가족으로 인한 복잡한 갈등과 불화도 많았겠지만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상호보완과 호혜(互惠)작용도 컸다.

몇 년 전 담임을 맡고 있을 때 신입생 새 반을 맡은 지 며칠이 안 돼 중후한 노인 한 분이 나를 찾았는데, 틱장애(ADHD)를 앓고 있는 내 반 학생의 조부였다. 간단한 가족사와 손자의 성향을 자상하게 들려주시는 조부의 말씀은 담임인 나를 감동시킴과 동시에 학생의 특성파악에 큰 도움이 됐었다. 학생의 부모가 외국유학 중 양육을 소홀히 한 결과 그런 증세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뒤에 만난 부모는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늘 손자와 같이 지낸 조부는 부모를 포함한 그 누구보다 손자의 특성을 잘 알고 계셨기에 핵가족시대, 특히 맞벌이 부부의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이나 보살핌을 조부모가 맡는 것이 참으로 바람직할 것 같다. 특히 맞벌이 부모의 바쁜 출퇴근 시각에 어린 자녀의 등·하교를 조부모가 대신할 수 있고, 조부모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나 전통적 가치를 오롯이 전수할 수 있는 것도 삼대 교육으로 가능할 것이다. 삼대 동거는 부모의 부양에 따른 수고로움도 없지 않겠지만 이 시대의 화두인 부모 봉양과 자식 교육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고려장하고 버린 지게를 그 아들이 다시 지고 오는 것을 보고 연유를 물으니 훗날 저도 아버지를 버릴 때 쓰기 위함이란 말을 듣고 반성했다는 설화의 내용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고 “부모에게 공손하고 날개를 낮추며 겸손하라. 그 두 분은 어려서부터 저를 양육하였나이다”(꾸란17:23-24)라고 한 무슬림들의 지혜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조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요즘, 어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노인복지에 많은 신경을 쓸 모양이다. 내년 7월이면 모든 노인들이 4만~20만 원의 ‘국민행복연금’ 지원을, 거기에다가 단계적이기는 하지만 ‘65세 이상 어르신의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의 혜택을 받을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돈이나 보험이 아니다. 돈과 의료보험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더 자식이나 손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살가운 정(情)이 우선일 것이다.

지난주엔 우수, 다음 주가 경칩이다. 바야흐로 봄이지만 이 봄날에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찬바람이 들락거리는 것은 비단 꽃샘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실 부모 없는 고애자(孤哀子)의 슬픔이 엄습하는 초봄의 심적 황량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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