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4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40)
  • 경남일보
  • 승인 201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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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상옥, 그리고 예술의 향기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40)
<1>김상옥, 그리고 예술의 향기 
 
 
며칠 전 시동인지 ‘맥’(?)이 배달돼 왔다. ‘맥’은 1937년 박남수, 임화, 김용호, 함윤수, 김상옥 등이 참가했던 동인지인데 4집까지 나왔었다. 일제가 우리말 동인지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 등의 내외여건이 여의치 않아 단명으로 그쳤지만 순수 열정에 대한 호기로움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동인 가운데 김상옥이 17세 최연소였는데 이때는 아직 김상옥이 ‘문장’지로 데뷔하기 전이므로 엄격히 말해 김상옥의 데뷔를 ‘맥’으로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쳐져 온 ‘맥’은 1995년 초정(艸丁) 김상옥이 중창간하여 10집에 이른 것으로 김상옥이 2집까지 내고 3집부터는 산청 시천면 출신 허윤정 시인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간으로 발행해온 그 책이다. 김상옥이 1,2집을 내는 동안 ‘백자 예술상’을 제정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몇 번의 시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상과 관련하여 김상옥과 공유하는 부분의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줄인다. 다만 70년대 중반이던가, 김상옥이 진주 출입이 잦았을 때 김상옥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자리는 삼현여중고 창립교장 최재호(시조시인), 김석규(시인, 당시 삼현여중 교무), 박재두(시조시인, 삼현여고 교사) 등이 동석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돈 200만원이 생겨 우리나라 참신한 문인을 골라 상을 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외수라는 소설가가 눈에 띄었지요. 이외수가 어느 잡지에 소설이 당선된 뒤 ‘수상 소감’에서 ‘야 이놈아, 세상이 썩어 문드러져도 너만은 썩지 말아라.’라 했는데 눈이 번쩍 띄었어요. 그래 이외수가 사는 춘천으로 가서 상금을 전달했어요.” 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필자는 통영 ‘예술의 향기’(통영문화예술인 기념사업회)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초정 김상옥 제8주기 추모제(2012년 10월 31일)에 초청을 받아 ‘내가 만난 초정 김상옥’이라는 제목으로 추모 회고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김상옥이 삼현여자중고등학교 교빈(창립 교장의 위촉)으로 자주 진주에 왔던 이야기, 삼현 교가 이야기, 최재호와 두 사람이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을 놓고 낭송 겨루기를 했던 이야기, 부산에서 광복후 열렸던 광복기념 백일장에서 김상옥이 3번 연속(3일간 연속 백일장) 장원한 이야기, 김상옥이 작품으로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문인 취급을 하지 않았던 이야기, 진주의 이영성 시조집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 삼천포 중학을 다니던 박재삼이 김상옥을 보고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했던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 중 떠오르는 순서대로 요약해 추모사를 대신했다.

여기서 통영 ‘예술의 향기‘(회장 이지연)에 대해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이 단체는 민간단체로 관변에서 지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조건 없이 회원이 된다는 점, 참가할 의욕만 있으면 언제나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단체로서의 정체성이었다. 오순도순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도 딱딱하거나 의전 중심이 아닌, 형식 파괴라는 점이 형식인 점도 신선했다. 이 단체에서 지내는 추모제는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청마 유치환 추모제(2월 13일), 김용익 추모제(4월 11일), 김상옥 추모제(10월 31일), 윤이상 추모제(11월 3일), 김춘수 추모제(11월 29일) 등을 기일에 맞춰 연다는 것이다.

‘예술의 향기’의 한 회원은 “우리 단체는 우리 지역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높은 업적을 남긴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향기를 맛보고 기리는 모임입니다. 그 외 아무 뜻이 없습니다. 초정 선생님의 추모제는 초정 선생님이 자리에 오시면 좋아하실 작품들을 많이 낭송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형식 파괴지요. 파괴는 관변이 아니라 저변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필자는 이 김상옥 시인 추모제에 참석하고는 ‘예술의 향기’야 말로 향기로운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아직 통영 아닌 곳에서 그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기일에 맞춰 추모하고 기리는 행사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한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총체적인 시각에서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간다는 점이 향기로운 것이다. 진주의 경우 기리는 대상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창원도 김해도 추모해야 할 예술인들은 설레이도록 많을 것이다.

-소재발굴 등의 이유로 잠시 동안 연재가 중단됐었던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 길’이 240편을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재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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