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梅花)
매화(梅花)
  • 경남일보
  • 승인 201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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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매화 옛 등걸에 봄절(春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청구영언에 실린 매화(梅花)라는 시이다. 지금이 그렇다. 춘설은 아니지만 예년에 볼 수 없는 추위로 남쪽지방에서조차 매화의 개화가 늦어지고 있다.

▶오늘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밖으로 나온다는 경칩이다. 비단 개구리뿐이랴. 벌레들도 때를 만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벌·나비 분분히 날고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도 녹아내려 소리를 낸다. 나무도 수액을 한껏 뽑아 올려 고로쇠 물이 천세가 날 때이다. 그러나 올해는 계절의 순환이 한참 더디다.

▶법정 스님의 매화사랑은 유달랐다.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하동 매실마을을 찾곤 했는데 열반하시기 전 해에도 ‘섬진강 매화가 날 기다릴텐데’라며 채비를 갖춰 길을 나섰다. 매화 향이 노스님의 춘심을 자극한 듯하다. 스님은 매실마을에서 매화향을 맡으시면서 “꽃멀미가 난다”고 했다. 매화나무에 휘파람새 깃드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봄나물도 모습을 드러낸다. 달래, 냉이, 씀바귀 풋내음 싱그럽고 나물 캐는 아낙들 치맛자락이 살랑거리는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우리네 정치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들어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건만 아직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희망가를 부르며 경제부흥, 문화융성 기대감으로 가득 차 발걸음이 가벼워야 할텐데 명분에 얽매여, 체면이라는 도그마에 묶여 찾아온 봄날을 가로막고 있다. 봄에는 봄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밭 갈고 씨 뿌리는 수고를 마다해선 안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매화는 언제쯤 봉오리를 터트려 우리에게 꽃멀미를 선사할지.

변옥윤·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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