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와 햄릿
오셀로와 햄릿
  • 경남일보
  • 승인 201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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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바바라 터크먼(B.W.Tuchman)이라는 사람이 오랜 기자생활을 통해 터득한 역사의식으로 저술한 ‘독선과 아집의 역사(조민·조석현 역)’라는 책을 보면 독선과 아집에 찬 지도자들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비참하게 엮어져 왔는가를 속속들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부패, 인권과 자유와 같은 거대담론에 대해서는 시시콜콜히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정작 정치현장에서의 아집과 독선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를 빼고는 아무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집과 독선이야 말로 ‘만성질환’인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17세기 중엽, 반세기동안이나 스웨덴의 총리직에 있었던 악셀 옥센셰르나(Axel Oxenstierna)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 해주고 있었다.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 두거라”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터(Peter) 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하찮은 사람들이 모든 분야의 정상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를 묻고 있는 원리다. “모든 사람은 무능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한다”는 것을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최고 정상에 서면 새로운 욕망이 생길 이유가 사라지고 그 지위의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역설도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 된 사람으로 옆에 있는 화로를 치울 줄을 몰라서 죽은 왕이 있다. 17세기 초 스페인의 펠리페 3세라는 사람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몸종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만 고열에 떠죽은 것이다. 아둔함과 무능의 극치일 것으로 여겨진다. 지위가 가져다 준 타성에 젖어 스스로 무능해 진 결과라 여겨진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음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한 사례는 실로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터크먼은 아스텍왕국의 국왕 목테수마의 경우를 들고 있다.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스페인군사가 맨 처음으로 찾아 나선 곳은 멕시코였다. 이때 멕시코의 아스텍 왕국은 신비스러운 종교적 신념에 쌓여 있었다. 번쩍이는 황금으로 장식된 궁전에서 국왕은 침략해 오는 스페인 군사를 오히려 환영하면서 맥없이 자신의 나라를 내어 주고 자신도 화형으로 죽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종교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된 경우였다.

그렇다면 정치적 신념이 망상으로까지 발전된 경우는 왜 없었겠는가? 있다. 역시 히틀러의 사례가 제격이 아닐까싶다. 1945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전쟁의 패배가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듯 하자 그는 위대한 독일국민에게 있어 패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패배로서는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내린다. “독일에 있는 모든 공업기지와 통신기지를 남김없이 파괴하여 적군에게 념겨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이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자가 우리 시대라고 하여 왜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많은 독선과 아집의 틈바구니에 햄릿과 오셀로와 같은 주인공이 끼어 있다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터크먼은 결론 맺고 있다. 다시 말해 햄릿은 이아고의 본성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오셀로는 주저 없이 클로디어스왕을 죽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아고는 갖은 음모와 모략으로 오셀로를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런 이아고의 본성을 격정적이고 단순한 성격의 오셀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어코 그에 의해 비극적 종말을 스스로 자초하고 만다. 그러나 차분하고 사변적인 햄릿이 그 주인공이었다면 이아고의 음모는 사전에 예방될 수 있었지 않았나하고 말한 것이다. 클로디어스왕은 햄릿의 부왕을 죽이고 자신의 형수인 왕비를 가로챈 햄릿의 숙부다. 만약에 오셀로가 햄릿의 주인공이었다면 당연히 자신의 부왕을 죽인 장본인이 클로디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그 격정적인 성격으로 하여 이리저리 골몰할 것도 없이 일격에 복수를 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헤로도토스가 말했다던가? “피가 끓으면 인간은 이성을 잃는다”고. 이는 오셀로의 경우임이 분명하다. 지나치게 끓는 피로 이성이 마비된 오셀로는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인다. 그러나 끓는 피도 없는 햄릿은 또 어떨까? 엉뚱하게도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연인 오필리아마저 자살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남북한 지도자들 모두가 새겨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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