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병에 만원? 대신 푸짐한 안주가 공짜
소주 한병에 만원? 대신 푸짐한 안주가 공짜
  • 허평세
  • 승인 2013.03.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의 독특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통영(충무) 다찌>
통영 다찌 문화
통영의 다찌집 술상차림 모습.
 
 
지난 1995년 옛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폐합돼 출범한 통영시.

통영지역에는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기암 괴석과 올망졸망 들어선 570개의 각종 섬들이 조화를 이뤄 빼어난 해양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자연경관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향하게 했으며,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통영지역으로 몰렸다. 그리고 바다, 섬, 항구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서정적인 감성을 자아내 유치환과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등 걸출한 예술인들을 배출하는 등 예향의 도시로 자리잡게 했다. 이러한 배경은 통영지역 음식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전국에서 손꼽는 명승지로 발돋움한 통영시는 통제영 당시 음식들이 대를 이어 오면서 통영만의 독특한 토속음식으로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 못지않게 음식문화도 전국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통영지역의 음식 문화는 인정이 넘쳐나는 푸짐함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독특한 음식문화 중 유달리 이름을 얻고 있는 것이 충무김밥과 술상 차림이다. 충무김밥과 함께 통영만의 독특한 먹거리가 ‘다찌’이다. ‘통영 다찌’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음식문화인지 생소하다. 그러나 도내 애주가들사이에는 통영지역만의 매력적인 ‘술 문화’로, 술꾼들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겨 놓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진주 실비’나 ‘마산 통술’과 비슷한 형태이나, ‘다찌’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으며, ‘진주 실비’나 ‘마산 통술’과는 조금 다르다.

통영 주당들의 독특한 술문화 ‘다찌’. 술을 시키는 주당들의 주문에 따라 안주 종류도 차츰 전복과 도미 등 고급어종으로 달라진다. 대부분의 술꾼들은 ‘다찌집’에서 먹어 보면 곧바로 그 매력에 빠져든다. 그래서 ‘통영 다찌’는 계속 찾게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독특한 주문법과 계산법 또한 통영 다찌’만의 특징이다. 메뉴판에는 술 종류와 가격만 적혀 있는데 소주 1병에 1만원, 맥주는 1병 6000원, 기본은 3만~4만원이다.

술은 얼음으로 가득 채워진 플라스틱 통에 담겨 나오고 곧 이어 안주가 나오는데 안주값은 이미 술값에 포함돼 있다. 특히 통영지역은 수산업 발상지이다. 지역특성에 맞게 ‘다찌집’에서는 온갖 해산물이 안주로 제공된다. 바다내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싱싱한 해산물들이 술상을 꽉 채운다. 통영지역에서 ‘다찌집’을 처음 찾는 술꾼들은 세번 놀란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함에, 맛에 놀란다.

◇유래

‘통영 다찌’는 진주 실비, 마산 통술집, 전주 막걸리집과 함께 서민적인 술 문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통영 다찌’만의 특별함이 있다.

‘다찌’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상당수는 그 어원을 일본어에서 찾고 있다. ‘다찌’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어의 느낌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찌’라는 일본어에서 ‘다찌’는 여럿을 뜻하는 복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식이 많다는 의미로 쓰인 것일까 싶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또 일본에서 서서 먹는 ‘다찌바’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는 서서 먹는 것을 ‘다찌구이’라고 하고 서서 먹는 초밥을 ‘다찌노스시’라고 한다. 참치집에서 ‘다찌’는 주방장이 서 있는 곳, 주방장 앞쪽 손님이 앉는 곳을 지칭한다. 이에 따라 ‘다찌’의 의미를 긴 탁자가 있는 ‘스탠드바’나 선 채 술을 마시는 ‘선술집’이라는 일본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말 ‘다 있지’에서 유래됐다는 시각도 있다. ‘다 있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돼 ‘다찌’로 정착됐다고 해석하는 부류도 많다. 즉 이들은 ‘다 있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다. 통영 앞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한 상 가득 다 나오기 때문에 ‘다 있지’라는 것이다.

통영에서 ‘다찌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들도 그 어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다찌’만의 독특성

음식문화는 똑같이 출발해도 세월과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내고, 비슷하지만 다른 먹거리 문화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이 ‘통영 다찌’에서 확인되고 있다. ‘통영 다찌’도 세월과 지역의 특수성으로 다른지역과 다르게 변화를 가져 왔다.

우선 서서 마시지는 않는다. 통영에서는 ‘다찌집’이 ‘실비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실비집’은 안주를 마련한 실제 비용만을 받는 술집을 뜻한다. 실비집이나 선술집은 어려웠던 시절에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와 서민들이 찾던 저렴한 술집이다. ‘다찌집’에서는 술만 시킬 수 있다. ‘다찌집’ 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소주이건 맥주이건 술 선택권만 있다. 안주의 선택권은 손님에게 없다. 손님은 주인이 내주는 대로 안주를 먹어야 한다. 주인이 내놓는 안주는 그날 가까운 포구에서 산 싱싱한 해산물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안주는 날마다 다를 수 있고 계절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다찌’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이 ‘다찌집’을 찾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술 1~2병 시켜 놓고 안주만을 즐기거나, ‘안주가 적다, 많다’ 불만을 이야기하는 손님들이 나타났다. 특히 소문만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안주 문제로 인해 주인과 손님 간에 약간의 다툼이 발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고 한다. 해소책으로 ‘다찌집’에 기본상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3~4인 기준으로 5만원, 7만원, 10만원짜리가 생겼다. 5만원 상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5병의 술과 안주가 나오고, 10만원 상에는 10병의 술과 안주가 나온다. 그리고 추가로 술 1병을 시킬 때마다 안주 1가지가 따라 나온다. 오늘 무슨 안주가 나올까. 그날 주인 아주머니의 기분이 좋으면 안주가 더 나올 수 있고, 몸이 아프고 힘들면 적게 나올 수도 있다. 손님은 이 모든 것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찌집은 불문율이 많으나, 정도 흐르고 있는 공간이다. 남은 술을 가져가서는 안된다. 기분이 좋아서 주인이 안주를 다른 날보다 더 내주면 시킨 술값보다 값을 더 치르고 가는 손님도 있기도 하는 인정이 넘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다찌집’ 주인들이 꺼린다. 안주가 아니라 술에 따라 매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술을 적게 시키는 경우에는 ‘다찌집’은 적자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찌집’의 분위기는 소란스럽다. 옆 손님이 소란스럽게 하더라도 이를 나무라서는 안되는 게 ‘다찌집’의 불문율이다. 원래 ‘통영다찌집’은 선창에서 일을 마치고 온 어부들의 뒤풀이 장소였기 때문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으며, 주인이 북장단을 칠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야 한다. 그래서 ‘다찌집’은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인심까지 파는 곳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