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42)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42)
  • 경남일보
  • 승인 201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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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진주여고와 박경리 시비(詩碑)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42)
<3>진주여고와 박경리 시비(詩碑) 
 
진주여자고등학교(교장 정준영) 교정에 소설가 박경리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왜 박경리의 시비가 진주여자고등학교 정원에 세워진 것일까? 알려진 대로 통영 출신 박경리는 통영초등학교를 나와 진주공립고등여학교(1941-1945)를 졸업했다. 진주공립고등여학교는 진주여고의 전신인데 그 앞에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1925-1938)와 봉산고등여학교(1938-1939)가 이름을 달리하며 민족교육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황민화 교육정책(1938-1945)에 의해 일신재단에서 운영하던 여학교는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일제의 공립으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학교 이름이 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였다. 그러잖아도 일제의 압박에 설움을 딛고 헤쳐온 교육이었는데 명실공히 일제는 민족교육의 현장을 강탈해버린 것이었다. 그 한많은 시기에 박경리는 진주여고를 다닌 것이다.

박경리는 1926년 그의 모교가 생겨난 그 이듬해 통영 명정리에서 태어나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등이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이후 1959년 ‘표류도’, 1962년 ‘김약국의 딸들’, 1964년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의 장편을 발표했다. 대하소설 ‘토지’는 1969년부터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 전작이 완성되었다. 장장 25년에 걸쳐 원고지 4만장 분량으로 집필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자료는 문학관련 기초 서적을 찾아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박경리가 소설을 쓰는 한 편으로 남은 시간에 시를 쓰고 시집을 묶어내었던 사실을 아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집으로 ‘자유’,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유고시집) 등이 그 시집이다. 필자는 하동 평사리에 소설 속의 배경이던 최참판댁이 지어진 후 개최된 제1회 토지문학제에서 ‘십분 특강’에 초대되었는데 인파 속에서 가벼운 문학, 짧은 문학 이야기가 필요했던 주최자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박경리의 시 ‘미친 사내’를 화제로 삼았었다. 내용은 “갈래머리 여고시절 학교를 파하고 나오는 길목에 또개라는 이름의 미친 사내가 우리 길을 가로막고 ‘앞앞이 말못하고’라 하며 가슴치며 울부짖었다. 몇 십년 지난 지금 비내리는데 그 사내는 죽어 꽃이 되었을까, 앵무새가 되었을까”라는 것이었다. 진주여고 시절의 까마득한 옛날의 그 장면이 떠오르고 그 사내를 아름다운 쪽으로 상상을 하는 작가의 교양이 돋보이는 것이라고, 마치 선덕여왕이 자기를 사랑한다며 돌아다니는 지귀라는 거지에게 팔찌를 끼워주는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고 짤막히 평을 했었다.

진주여고 교정에 세워진 시비의 시는 ‘우리들의 시간’이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이 시는 짧지만 주는 의미는 심장하다. 과신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으므로 죄 짓지 말고 겸양하며 살아가자고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또 다른 교훈을 던져 주고 있는 시비라 하겠다.

이 시비는 2008년 11월 27일 진주여고 총동창회(회장 김계선)에서 세웠는데 당시 학교장은 조헌국 교장이었고 글씨를 쓴 이는 26회 탁옥지씨였다. 제막식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축사를 했다. “진주여고는 경남 일원의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민립학교였다. 창립 초기에서부터 일제의 공립으로 재단이 강탈당하는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 한 쪽에서부터 시려온다 일제는 민족교육을 비짜루로 싹싹 쓸어서 바다에 던져 넣으려 했으나 그 비짜루 사이에 끼여 한 학교가 남았으니 그 학교가 진주여고다. 그런 민족학교에서 박경리같은 학생이 나오고 그 학생이 민족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는데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경리 작가를 기리는 우리나라 거점은 네 군데다. 원주의 토지문학관,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통영 미륵도의 박경리 기념관, 진주의 진주여고가 그것이다. 진주여고에 시비가 있고 도서관 내에 ‘박경리 동문 기념문고’가 있다. 학교에서는 교내 백일장으로 ‘박경리 백일장’ 행사를 하는데 앞으로 선배를 생각하고 계승하는 작은 행사들을 구상하고 추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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