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으로 꽃 피우는 지역문화
공공건축으로 꽃 피우는 지역문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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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 소장·건축학과 교수)
필자가 독일서 유학했던 1990년대 초 유럽 동구권의 철의 장벽이 무너졌을 때, 갈 수 없었던 공산국가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인과 함께 체코, 헝가리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장 좋았던 경험은 저렴한 물가였다. 독일에서 근검절약해서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은 호텔 커피가 불과 몇 백 원밖에 하지 않는 놀라운 세상에서 인간답게 돈을 쓰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이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며칠 더 머무르다 왔던 기억이 난다.

한편 물가만큼이나 감명 깊었던 것은 도시 및 건축 풍경이었다. 잘 정돈된 도시공간과 수려한 건축물은 가난한 동구 나라를 경시하던 마음을 싹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하며 부끄럽기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 경제적 이유로 파산해버린 동구권이 이 정도였으니 서유럽 선진국들의 건축적 위상은 더 말 할 나위가 없었다. 이들은 특히 1980년대에 국가 및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공공건축물 사업을 진행하였다. 프랑스 파리만 해도 미테랑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공공기관 등의 수많은 건축물을 신축 및 정비함으로써 관광 등을 통한 경제적 특수를 맛보았다. 이에 질세라 영국의 마가렛 데처 수상도 역시 대규모 도시건축 사업을 전개하여 국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했다. 독일도 많은 도시에서 대규모 재생 및 신도시 건축사업을 시행하여 국력 신장을 꾀하였다.

눈여겨 볼 점은 이러한 유럽의 나라 및 도시들이 유럽공동체를 형성할 만큼 공동성을 가지면서도 개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는 방사선 도시를 바탕으로 대칭적이고 위풍당당한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런던의 건축은 초대형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반면 전통적 지방분권 국가인 독일은 지역 고유특성과 역사를 존중하는 건축을 시행해 왔다. 남부에 있는 기계, 항공, 자동차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의 벤츠박물관은 엔진 실린더를 건축적으로 형상화하여 첨단산업 및 문화도시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각인해 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소도시인 프라이부르크는 광대한 산림휴양지인 흑림 인근에 있어 일찍부터 생태도시를 지향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공공건축물의 지속가능 건축화를 조례로 제정하여 생태수도의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과거 석탄공업 중심지였던 쇠퇴한 루르지방의 도시들은 생태와 문화도시 건축 재생사업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도시를 떠나던 젊은이들이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통독 후의 새 수도인 베를린 건축은 통일과 미래를 상징이라는 새로운 도시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도시건축은 여전히 무미건조해 보이기 짝이 없다. 특히 진주 같은 중소지방 도시들은 근대화 및 산업화를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지 오래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럽의 경우가 시사해 주는 것처럼 이를 되살리는 방법 중 하나는 공공건축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살려내어 그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흔히 공공건축에 정체성을 불어넣고자 할 때 사람들은 시화, 시목 등의 상투적인 특징을 요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초보적인 생각이다. 이보다는 역사, 문화, 경제 등의 인문사회적인 요소와 과학·기술적 요소 그리고 기후, 자원, 지형, 토양 등의 생태·지리학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녹아나야 하고, 이것들이 건축을 통해 가시화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작지만 수정 같은 도시의 가치를 알아 볼 것이다.

현재 진주는 유례에 없던 공공건축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혁신도시, 산업단지, 역세권 등에 경남도의 제2청사나 LH본사 같은 많은 공공기관, 공기업, 공공성 건축물 등이 줄줄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진주의 정체성을 가미하여 도시를 진주 같은 보석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적 연구, 가이드라인, 조례 등이 전무한 실정이다. 낙후지역이라 한탄만 하지 말고 넝쿨째 굴러온 복을 잘 붙들어 매는 것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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