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가야 '잊혀진 나라'의 황금빛 회상
1500년전 가야 '잊혀진 나라'의 황금빛 회상
  • 한용
  • 승인 201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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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김해 대성동 고분군'
가야는 낙동강 하류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금관가야가 그것이다. 이를 웅변해 주는 것이 대성동고분군이다. 경남도는 최근 함안군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김해 대성동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대상지로 최종 결정했다. 본보는 김해 대성동고분군 7차 발굴조사 자문위원회 자료집과 지난해 11월 9일 국립 김해박물관에서 열린 ‘가여유적의 역사적 위상과 세계유산 가치 연구’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대성동고분군을 재조명 해본다./편집자 주

대성동고분군(大成洞古墳群)은 행정구역상 김해시 대성동 434번지 ‘왜(애)’꼬지 구릉과 그 주변일대로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대성동고분유적에서 약 600m 북쪽에는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들어 있는 구지봉(龜旨峰)이 있으며, 동쪽 300m쯤 거리에는 김수로왕릉(金首露王陵)이 위치한다. 남쪽으로 약 500m 내려가면 가야인들의 생활중심지인 봉황동유적(鳳凰洞遺蹟)이 해반천을 따라 형성돼 있다.

당초 고분군은 국가사적 제341호로 지정된 5만6762㎡ 범위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1992년 구릉의 북쪽 구지로 개설 때 구지로분묘군이 확인됐다. 이어 2004년 구릉 남쪽의 옛 공설운동장부지인 가야의 숲(수릉원)에서 목관묘와 석곽묘, 석실묘 등이 나왔다. 2011년 가야사 2단계 사업구간 내 주차장부지 조성을 앞둔 발굴에서도 고려시대 토성하부에서 4세기 때 목곽묘가 확인됐다. 고분군의 범위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출토 유물

대성동고분군은 7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어졌다. 제1차 발굴조사 결과 유적의 중요성이 인식돼 1990년 11월에 사적 제341호로 지정됐다. 1~4차 발굴조사는 부산 경성대학교박물관이, 5~7차 발굴조사는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맡았다.

조사결과 총 200기의 무덤과 구(溝) 1기, 주거지 1동이 나왔다. 1~3차 발굴조사에서는 3~5세기 전기의 대 형목곽묘와 2세기 전기의 목관묘 등 가야지배층들의 묘가 확인됐다. 4차 때는 22기의 목관묘와 3구의 순장인골이 양호하게 남아 있는 57호분이 조사됐다. 5차 발굴조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실물 안장과 은제환이 조사됐고, 6차에서는 5세기 후기 대형수혈식석곽묘와 청동기시대 석개목관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 확인됐다. 비록 훼손이 심하지만 공백으로 있던 4세기 초기 대형 목곽묘가 발굴된 것이어서 가치가 크다. 하지만 여전히 5세기 중엽의 대형무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5차 발굴조사 당시 조사가 안 된 무덤들 중 이 시기의 무덤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발굴팀은 7차 조사를 벌였다. 7차 조사에서는 가야시대 4세기 2/4~3/4분기의 대형목곽묘(88호, 91호) 2기와 5세기 4/4분기~6세기 1/4분기의 수혈식석곽묘 5기를 조사했다. 대형 목곽묘인 88호와 91호는 단독 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91호는 규모와 출토유물이 많아 왕급무덤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91호에서 출토된 금동·청동제마구류와 청동완 등은 국내처음으로 확인된 중국 모용선비 전연시대(337~370년)의 유물들이다. 여기서 나온 금동 제품들은 국내에서 출토위치가 확실한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존 5세기 대에나 금동제품이 출현한다는 통설을 뒤엎는 획기적인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91호에서 출토된 5Cm 규모의 유리병 손잡이가 ‘로만글레스’로 확인되면서 금관가야인들의 국제성과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 월성로 가15호에서 출토된 로마 양식의 유리병 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으로 확인돼 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 대성동고분군의 가치

이영식 인제대학교 박물관장은 ‘김해 가야유적의 세계유산적 가치’ 편에서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고찰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관장은 1990년 이후 줄기찬 발굴조사 결과 가락국 왕릉의 변모과정과 왕릉묘역으로서의 성격에 주목하게 되었고, 특히 고대의 가야왕국이 중국·일본 등과의 빈번한 교역과 교류를 전개했던 국제적 면모가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특히 이 관장은 북쪽의 구지로분묘군과 남쪽의 가야의 숲 조성부지에서 확인된 목관묘(木棺墓)에서부터 ‘왜(애)’꼬지 구릉 중턱의 목곽묘(木槨墓)를 거쳐 정상부의 석실묘(石室墓)의 형식으로 변해가던 가락국 왕묘의 전개과정을 개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분묘간의 중복(重複)을 통해 몇 개의 고분이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전자가 가야고분의 발전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같은 가야왕실 안에서도 집안 사이의 혈연적 구분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접 백제나 신라의 왕릉과는 다른 특징이라고 정의했다.

이 관장은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하고 가야는 철 생산을 왕성하게 했으며 해상왕국의 국제적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는 견해도 내놨다.

특히 대성동 57호분 출토의 여인인골은 과학적 복원을 통해 생생한 가야여인으로 되 살아 났다. 이는 가야인의 형질과 인종적 계통을 추정하는 자료가 된다. 또한 출토 인골은 가야식 순장(殉葬)의 풍습의 시작을 보여줬다고 했다. 순장은 가야인의 매장문화에서 나타나는 사후관념((死後觀念)과 같은 가야문화의 특수성이 두드러지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일련의 사안을 살펴보면 대성동고분의 유구(遺構)와 유물(遺物)에 관한 정보는 학술적 발굴조사를 통해 확보되었고, 과학적으로 분석된 것이어서 유적의 진정성(眞正性)을 보장하기에 충분한데다, 고분 또는 왕릉으로서의 완전성(完全性)도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유적이란 것이 이 관장의 판단이다. 여기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요소로 평가될 수 있고, 중국 또는 전연(前燕) 등과의 교류를 보여줘 동아시아 교류의 중요 축을 담당했던 가야왕국의 보편적 가치(OUV)에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이 관장은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이 관장의 견해는 매우 고무적인 결과를 돌출해 낼 학자적 시각으로 보인다. 세계유산 등재의 기본조건은 국가와 민족이 개별적으로 보존해 온 유산 중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지닌 유산으로서 세계적 시각에서 보호가 필요한 유산이라고 전재할 때 대성동고분군은 이 관장의 시각처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관장은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대성동고분군은 국유지이기 때문에 형질변경에 따른 훼손도 없을뿐더러 시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데다 전문 학예사도 배치해 관리하고 있어 보호체계관리 또한 담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등재 전략

하승철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자료연구실장은 ‘가야문화유적의 현황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방향’에서 ‘가야문화유적 세계유산 등재전략’을 발표했다.

학술심포지엄에서 하 연구실장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면서 등재추진 요건 충족을 위해 문화유산의 보존 및 정비를 담당하게 될 전문가 집단과 국가기관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도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민참여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가야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용, 미술, 연극, 노래, 문학, 영상, 에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이 절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승철 연구실장은 특히 가야문화유산은 경남도내 설화, 전설을 탄생시켰고 가야금, 구지가, 수로왕 건국신화 등 무수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스토리텔링 할 필요가 있다면서 도민, 청소년, 공무원, 관련 연구자 등이 하나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토론, 보존관리를 위한 모니터링 등을 해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가야문화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1500년간 우리 곁을 지키며 우리의 의식 속에 살아 버팀목이 되어온 가야문화유산을 새롭게 이해하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문화유산의 미래가치를 재발견 하는데 충분한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제도를 마련하는 궁극적 목적도 ‘이것’이라고 하승철 연구실장은 피력했다.

대성동유적 항공사진
하늘에서 본 김해 대성동고분
1호 그릇받침
1호 그릇받침
2호판갑옷
2호판갑옷
13호파형동기
13호파형동기
23호 청동거울
23호 청동거울
29호 청동솥
29호 청동솥
88호 허리띠장식
88호 허리띠장식
91호 중요유물
91호 중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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