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 경남축구열전
월드컵 첫 골, 아르헨 마라도나와 맞짱떴다<경남축구열전> 월드컵 1호골 주인공 박창선
임명진  |  sunpower@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3.22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사진=황선필 기자.

 
 
브라질 월드컵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오면 축구팬들을 설레게 하는 선수가 있다.

월드컵 출전 사상 대한민국에 첫 1호골을 선사한 박창선(59) 전 청소년국가대표팀 감독이 주인공이다.

박창선 전 감독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게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28분 기습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비록 경기는 1-3으로 패했지만 당시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그렇게 고대하던 한국 월드컵 사상 첫 골이 터졌다는 것에 큰 위안을 삼았다.

그런 그도 이제 환갑을 맞이하고 있다. 후덕해진 몸매, 그때의 날카로움은 다소 무디어진 듯 했지만 고향 김해에서 후배를 가르칠때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 했다.

◇ 월드컵 출전 사상 첫 골 직감했다

“슈팅하는 순간 상당히 시원하고 경쾌함을 느꼈어요. 당시 K리그에서 득점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고 바로 ‘골이다’는 감이 왔어요”

박창선은 당시 골을 넣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박창선의 그 골은 한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그렇게 기다렸던 1호골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전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제 축구인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죠. 하지만 대표팀으로 보면 아쉬움도 많이 남는 대회이기도 합니다”

당시 마라도나와 같은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박창선은 일약 ‘한국의 마라도나’로 불리며 일약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골을 넣고 난 후 독특한 기도 세리모니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멕스코 월드컵 16강 고배 아쉬움 두배

당시 한국이 속한 조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라고 해도 무방했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 동구권 강호 불가리아,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와 차례로 맞붙었다.

한국은 첫 경기 아르헨티나에 1-3으로 졌다. 물론 이길 것이라고 예측한 이도 없었지만 축구공은 둥글기에 결과는 아무도 알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한국은 세계 축구 정보에 너무 어두웠다. 30년 이상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데다 국제경험도 적었다.

“정보도 부족했고 지원도 너무 빈약했어요.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팀과의 경기에 앞서 상당히 위축됐어요. 너무나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대비책도 미흡했던 거죠”

지금처럼 대규모 지원 스텝이 꾸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역대 최강으로 꾸려진 대표팀의 기량을 채 피워보지도 못했다.

“아르헨티나전에는 마라도나 한 선수에게만 집착을 했어요. 나머지 10명의 선수도 다 세계적인 스타선수였는데 말이죠. 결국 축구는 그런 것 같아요. 한 쪽에 치우치면 반대쪽에서 실(失)을 할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마라도나에게는 한골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발다노와 루게리에게 연속 실점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나서 침통했던 락커룸에서 선수들끼리 이런 대화가 오고 갔어요. ‘후반전에는 우리가 가진 기량을 발휘를 하고 가야지 않는냐’, ‘한번 해 보자’, 그렇게 분위기가 살아나서 후반전에 좋은 경기를 하던 차에 저한테 슈팅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거죠”

박창선의 1호골은 대표팀에 많은 것을 시사했다. 그 대회이후 대표팀은 동구권 강호 불가리아와 무승부, 이탈리아와는 접전 끝에 2-3으로 아쉽게 석패했다.

“당시 이탈리아와 비겼으면 우리가 16강을 나갈수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정보가 어두웠냐면 조별 예선 경기가 치러지고 있는 다른 경기 진행상태를 전혀 알지를 못했어요. 그 정도로 열악했고 참가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어요”

대표팀 선수 구성에 있어 역대 최강이었고 그런 능력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었는데도 열악한 상황에 월드컵에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다.

박창선은 멕시코 월드컵때 맞붙은 마라도나를 아주 특이했던 선수로 평가했다.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시와 비교했다.

“메시도 너무나 득점을 잘하는 세계최고의 선수이지만 메시가 기술적으로 아주 두드러지는 선수인 반면, 마라도나가 좀더 잡기 힘든 선수가 아닌가 생각해요. 파워, 스피드, 기술이 아주 특출난 선수였어요. 키가 작은 마라도나가 상대가 아무리 마크해도 뚫고 나가는 한 마디로 힘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한국축구는 2010남아공 월드컵서 24년 만에 메시가 포진한 아르헨티나와 격돌했지만 1986년 아르헨티나전 경기를 재현했다. 1-4로 완패했다.

▲지난 10일 경남FC가 홈 개막전 이벤트로 마련한 경남 레전드와 함안대산여자고등학교 축구부 경기에서 월드컵 1호골의 주인공 박창선이 개인기술로 상대수비를 뚫고 있다. 사진=황선필기자


◇고향 김해서 제2의 축구인생

박창선은 고교시절 부터 주목을 받았다. 동아고 3학년 시절에는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고 경희대로 진학 한 뒤에는 1학년 부터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눈에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쳤다.

고교 시절에는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쳤고, K리그에서는 미드필더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1983년 K리그가 출범하고 나서 86년까지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1983년 K리그 도움왕, 이듬해인 84년에는 대망의 MVP를 수상했다.

이런 그의 활약 뒤에는 타고난 축구에 열정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무신 신고 다닐 때인데,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부에 들어가려고 운동화를 사 달라고 부모님을 졸라 댔죠. 그렇게 시작한 축구였는데, 동아고로 진학을 했어요. 창단 8년 동안 우승 한번 못했는데, 창단 10년 째 해에 제가 3학년때, 봄 대회부터 가을 대회까지 3개 대회를 우승을 했어요. 그때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축구계의 주목을 받은 박창선은 어디서건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연고대 스카웃 제의를 뿌리치고 경희대학교로 진학했다. 용꼬리 보다는 뱀 머리가 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대학 1학년 부터 주전으로 뛰고 국가대표를 바로 시작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그때 선택을 잘 한 거죠(웃음)”

현역에서 물러난 박창선은 이후 1992년 모교 동아고 축구부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듬해 1993년부터 경희대학교 축구부를 맡아 1998년에는 대한민국 U-20대표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박창선은 고향 김해서 재능있는 어린 후배들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2010년 김해서 그의 이름을 내건 박창선 축구클럽을 창단, 이듬해부터는 초등학교 엘리트 축구부까지 창단해 활동 폭을 서서히 넓혀가고 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선수들도 참 많이 다양화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위치별로 특색을 갖춘 선수가 있는데 지금은 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도 있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배 선수들도 많아졌어요. 내년이면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는데, 한국축구의 고유의 특징을 잘 살리고 제대로 준비를 한다면 브라질에서도 잘 싸울 수 있지 않을 까 기대를 가져 봅니다”

박창선은

출생=김해, 1954년생

학교=김해 합성중-김해중-동아고-경희대

경력=포항제철(1977-1982)-할레루야(1983)-대우로얄즈(1984-1986)-유공 코끼리(1987), 국가대표팀(19789-1986)

수상=K리그 도움왕(1983), MVP(1984),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U-20 우승(1998)


임명진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