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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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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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43)
<4>산청·함양·거창사건과 문학작품 
 
지난 19일 오전 거창군은 군청 브리핑룸에서 거창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 제작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영화 ‘청야’는 김재수 감독이 구상해 지난 2011년 거창사건 60주기를 추념하는 뜻으로 준비돼 오다가 2012년 시나리오 초고가 완성되면서 거창군에서 1억 2500만원을 지원해 줘 거창사건 희생자유족회와 김재수 감독이 추진해 왔다.

김재수 감독이 화제다. 그는 지난 2009년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수동마을로 귀농해 마을 이장 일을 보며 살아가는 바쁜 농사꾼이다. 그는 귀농하기 전에 ‘클럽 버터 플라이’, ‘천국의 셋방’ 등을 제작하여 활동했고 충무로에서는 다양한 인맥과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 제작으로부터 벗어나 귀농했을 터인데 왜 새삼 메가폰을 다시 잡은 것일까? 거창사건의 현장에서 느낀 아픔이 상상보다 더 큰 것으로 다가왔던 데 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거창사건은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준 말이다. 6·25 전쟁 중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당시 국군 11사단(사단장 최덕신) 9연대 3대대가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 719명을 통비분자로 몰아 학살했던 끔찍한 사건이다. 9연대의 작전명은 ‘작전 제5호’이고 비공식 작전명은 ‘견벽청야’(堅壁淸野)였다. 아군이 지켜야 할 지역은 견고히 벽을 쌓고 적에게 내주어야 할 지역은 말끔히 청소를 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용어에서 ‘청야’를 따 영화제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미 소상히 알려져 있지만 거창사건이 일어나기 3일전 비슷한 규모의 사건이 산청 함양지구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산청 함양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1951년 2월 7일 하루 동안 705명이 학살된 사건인데 학살부대는 거창사건을 일으킨 11사단 9연대 3대대였다.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상기 9연대 3대대는 거창에 먼저 진입하여 학살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차마 결행을 하지 못하고 ‘적정이 없다’는 구실로 거창을 빠져나와 산청으로 진입했다. 산청 금서 수철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1951년 2월 7일 새벽에 금서면 가현리로 잠입하여 주민을 학살하고 이어 방곡리, 점촌리 주민을 학살하고 이어 함양 유림 서주리로 가서 모아둔 주민들을 차례로 학살했는데, 총 705명이 무고하게 피를 흘렸다. 그날밤 생초면에서 야영하고 적정을 살피며 거창 신원면으로 들어가 9일부터 3일간 719명을 학살했다. 이것이 거창사건이다. 그러니까 사건 명칭을 거창사건이라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산청 함양 거창 양민학살사건’이라 해야 옳다.

지금 ‘거창’과 ‘산청, 함양’ 양쪽 유족회에서 각기 상이한 배상법을 국회 법사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이번 국회에서는 기필코 하나의 법안으로 통합하여 통과시켜 줘야 할 것이다. 과거사 정리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되었다. 눈물이 있는 국회라면 이 법안부터 처리해주면 나라에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다. ‘청야’라는 영화를 왜 만들겠는가?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는 청야의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이들 사건들을 두고 쓰여진 문학작품들은 많을 것이다. 그중 기억나는 것으로 거창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장편소설), 신중신의 ‘모독’(시집)을 꼽을 수 있고, 산청 함양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문효치의 ‘저 하늘에 별이 된 님이시여’(시비), 김수복의 ‘지리산 타령’(시집), 필자의 ‘화계리’(시집) 등을 기억할 수 있다.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1987)는 빨치산의 신원면 점령에서부터 시작하여 거창사건으로 알려지는 비극의 실상을 형상화했다. 내일의 학살을 하기 위해 3대대는 마을 주민 600여명을 신원초등학교 교실에 몰아넣었는데 문한돌의 아내가 산기가 있어 보초병에게 말하여 가족들이 교실 뒤에 있는 숙직실에 들어가 하루밤을 보내며 아기의 순산을 보게 된다. 다음날 아침 보초병은 이들 가족에게 교실로 들어오면 오늘 다 죽으니까 달아나라고 일러준다. 달아난 가족들에 의해 사건의 뼈대를 이루어 가지만 거의가 상상력에 의한 허구로 짜여졌다. 산과 마을의 거점을 오가면서 서술되는데 양쪽 중심 인물은 아기의 아버지 문한돌과 그의 동생이자 빨치산인 문한득이다. ‘태백산맥’의 염상구와 염상진의 구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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