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
성적 소수자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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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성전환자가 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기존 성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면 법적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이 처음 나왔다. 서울 서부지법은 지난 3월 15일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고 유방과 자궁을 절제하는 등 기존 성제거 수술은 했으나 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못한 성전환자 5명이 ‘법적인 성별을 남성으로 바꿔 달라’며 낸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국립국어원이 사랑이란 뜻풀이를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돼 있던 것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수정했다. ‘이성의 상대’를 ‘어떤 상대’란 중립적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연인, 연애 등 사랑과 관련된 몇몇 단어의 뜻도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으로 수정했다.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측의 설명이다.

생물학적 성(sex)의 차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변화의 움직임에 당황하겠지만 사실 성은 생물학적으로 규정되기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 이는 성을 둘러싼 담론이나 문화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으며, 생물학적 성(sex) 이외에 젠더(gender)와 섹슈얼리티(sexuality) 개념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젠더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남녀의 정체성과 성별 역할에 관심을 둔다면 섹슈얼리티란 성행위에 대한 인간의 성적 욕망과 성적 행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제도와 규범들을 뜻한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독신제도와 같은 사회적 관행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자신을 규정하게 하는 성적 지향성, 성정체성, 성적 욕망 등이 섹슈얼리티의 내용을 이룬다. 섹슈얼리티는 우리의 신체적 쾌락과 욕망을 표현해내는 문화적 방법인데 성적인 것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문화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에서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현직 동성결혼 총리가 탄생했다. 이는 ‘결혼은 성에 관계없이 두 성인의 합의에 따른 결합’으로 규정한 동성결혼 허용법안을 아이슬란드 의회가 같은 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써 공식화된 일이다.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 이외에 이미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벨기에가 2003년, 스페인이 2005년, 그 외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등이 동성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2010년에는 아르헨티나가 남미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는데 2012년에는 성정체성 법(gender identity law)을 채택하여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주민등록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아르헨티나 성정체성 법은 18세가 된 성인이 주민등록을 할 때 태어날 때의 성, 성전환수술, 법원의 승인에 상관없이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에 대해서 보수적인 아시아와 아랍지역에서는 동성결혼은 물론 동성결합도 대부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성에 대한 생각, 태도, 가치관 등은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성적 소수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낙인과 편견을 극복하자고 노력해 왔는데, 이들의 주요 현안은 고용평등의 권리보장, 혼인의 권리보장, 성적 소수자 혐오를 근절시키기 위한 시민교육,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 등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한국사회도 과거보다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몰이해와 거부감이 약해지고는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성적 소수자를 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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