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호황 물고 온 '국민 간식' 쥐치포
삼천포 호황 물고 온 '국민 간식' 쥐치포
  • 이웅재
  • 승인 201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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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독특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삼천포 쥐치포(쥐포)>
 
우리나라 대표적인 간식거리이면서 안줏거리로도 자주 이용되는 국민적 먹거리인 쥐치포. 반찬거리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쥐치포는 쥐칫과의 생선을 조미해 말린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쥐치포’라고 하기 보다는 ‘쥐포’라고 말한다. 그래서 표준어인 ‘쥐치포’가 더 어색하게 들린다.

지금 쥐치포 하면 삼천포 쥐치포를 최고로 치고 있으며,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쥐치포는 일찍부터 삼천포에서 가장 많이 생산돼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천시 최고의 특산품은 무엇일까라고 국민에게 묻는 다면 재고의 여지 없이 나올 수 있는 답이 ‘삼천포 쥐치포’일 것이다.

삼천포 쥐치포는 담백하면서도 쫄깃 쫄깃한 맛으로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국민 간식 거리로 수십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삼천포 쥐치포가 수 십년 동안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변치 않는 맛에 있다. 오랜 전통을 지키면서 맛을 이어가는 지역의 장인정신이 삼천포쥐치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래

쥐치포는 누가 어디에서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국내에서 쥐치를 포 떠서 말려 먹게 된 것은 1960년대 부터 라고 한다. 삼천포지역의 쥐치 가공업자 일부는 “일본에서 쥐포를 보고 와 1960년대 말에 이를 가공해 일본에 수출한 것이 한국 쥐포 역사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쥐치포 가공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전국의 쥐치가공공장 현황과 현재 쥐치 가공업을 하고 있는 사업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부산은 대규모 가공공장 중심으로 운영된 반면 삼천포와 여수는 소규모 영세업자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것이다. 흔히 불리는 쥐고기란 말도 쥐치의 부산사투리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감안해 추론해 보면 쥐치포는 1960년대 부산에서 시작돼 삼천포와 여수 등지로 전해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즉 1960대부터 쥐치포 역사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쥐치포 가공업자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쥐치포의 유래를 일제시대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생선을 조미해 말리는 방법은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것이고, 삼천포에는 ‘화어’(花魚)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이 전하고 있어 쥐치포의 역사를 일제시대까지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화어’는 새우, 학꽁치, 달강어, 붉은메기(나막스) 등과 같은 생선을 머리와 뼈를 제거한 후 꼬리가 붙어 있는 상태로 조미 건조한 어포이다. 꼬리에 노란색과 빨간색 물을 들여 꽃처럼 보인다 해 ‘화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삼천포에서는 화어를 사쿠라보시(さくらぼし)라고도 하는데, 일본의 말린 조미 어포 중에 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삼천포 쥐치포 호황기

삼천포 쥐치포가 가장 호황을 누렸을 때는 1960년대 말~70년대. 변변한 일자리는 커녕 남의 품삯 일도 흔치 않은 시절에 달랑 칼 하나만 들고 나가면 100만 원 돈을 쉽게 벌 수 있었으니…, 아줌마들은 포 떠고, 아이들은 떠놓은 포를 발에 늘어 말리는 일을 주로 했다. 당시 쥐치포 가공은 전 가족들의 일터였다.

마을마다 성업을 이룬 쥐치 가공공장은 당시 허가업체는 20여 개에 불과했지만 일반 가정집 등 허가 받지 않은 가내 수공업자를 포함하면 200여 곳을 웃돌았다고 한다. 이 시절 삼천포의 호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 있다. 천원 짜리도 귀하던 시절 1970년대 ‘삼천포는 개도 만원 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쥐치포가 몰고온 삼천포지역의 호황은 전국 곳곳으로 번져 갔다. 이기간 삼천포 수협이 전국에서 몰려드는 쥐치 어선들로 인해 전국 수협 위판고 순위에서 부산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쥐치 집산지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쥐치를 가공하고 남은 내장과 뼈를 가공하는 사료 공장의 활성화는 물론, 각종 선박들이 사용하는 물류를 공급하는 식품점과, 유류업계, 선술집 등 지역 대부분의 업종이 동반성장했다.

이렇게 지역경제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잡은 삼천포 쥐치포는 장꾼들을 통해 내륙지방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전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국민 간식거리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주요 품목이 됐다. 기름기가 없고 담백한 맛의 삼천포 쥐치포는 말려서 굽고 롤러로 얇게 밀어 일본 수출길에 오른다. 지역 경제에 효자 상품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초 가공산업이 본격화 되면서 단일상품 수출 1000만불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천덕꾸러기 취급 받던 쥐치가 수산도시 삼천포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쇠락기

불황을 몰랐던 삼천포 쥐치포 업계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해안 일대 어자원 고갈이 두드려지면서 쥐치 어획고도 부진에 빠졌다. 이는 삼천포 쥐치포가공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게다가 한일·한중어업협정 체결로 어장 마저 줄어들고, 이상기온과 마구잡이 남획으로 어자원 고갈은 갈수록 심화됐다. 이로 인해 부산지역 대형 가공 공장들은 큰 타격을 입고 폐업했으며, 소규모 영세업으로 운영되던 일부 삼천포 쥐치포 가공업체들만 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마저도 쥐치 물량 부족이 계속되면서 중국 등지에서 원단을 들여와 가공하는 실정이다. 국내산 쥐치를 원료로 안전하게 가공되는 국민간식인 삼천포 쥐치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삼천포 특산품 성장

청정바다로 염장이 쉽고 해풍 건조가 가능한 해안을 끼고 있는 삼천포의 환경은 쥐치포 가공업이 성장하기에 안성마춤이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히는 쥐칫과 생선은 쥐치, 말쥐치, 객주리, 날개쥐치, 그물코쥐치 등이 있다. 모양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질기고 까끄러운 껍질을 하고 있으며 입이 작고 머리에 ‘송곳’ 하나씩을 달고 있는 것은 다 같다. 머리가 크고 몸이 납작하여 살은 먹잘 것이 없다. 머리, 뼈, 내장, 껍질 빼면 살은 소량이다. 이 중에 쥐치포로 흔히 말려지는 것은 말쥐치이다. 생산자는 말쥐치가 가장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가장 많이 잡히는 종류이기도 하다. 쥐치는 남해에 흔한 생선이었다. 다루기 어렵고 살도 많지 않으니 먹지 않았다. 그물에 걸리면 골치가 아팠다. 머리의 ‘송곳’이 그물에 끼이면 엉키기 때문이었다. 쥐치는 떼로 몰려다니는데 큰 무리가 걸리면 그물을 버려야 할 지경이 되어, 어부들은 긴 막대기로 쥐치들을 몰아내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삼천포 쥐치포는 천일염으로 살짝 간만 해 순수한 고기맛이 살아있다. 쥐치는 원단(쥐치포)을 어떻게 가공하는냐에 따라 알포(껍질 벗긴 포 1조각)와 빵포(원단을 여러개 붙인것), 줄포(채썰듯 잘게 썬 것), 롤드(조미 늘인 쥐치포) 등으로 구분된다.

◇옛 명성 되찾는 길

한일·한중어업협정에 따른 어장 축소와 해양생태계 변화로 자원감소란 직격탄을 맞으면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삼천포 쥐치포는 아직도 전국민이 사랑하는 국민간식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내 쥐치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 등지에서 원단을 들여와 가공하는 현 생산체계가 한계를 보이면서 업계가 활기를 잃어 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일할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것도 악재다. 조속히 이러한 악재를 극복해 삼천포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던 1960~70년대 삼천포 쥐치포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한다.

‘삼천포쥐치포생산자 영어조합법인’ 설민우 대표는 “2008년 6월 사천시 특산품으로 추천받아 2009년 10월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을 획득하고 2010년 8월에는 ‘삼천포 쥐치포’ 상표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설 대표는 “삼천포 쥐포는 분명히 가격경쟁격이 있다. 베트남산 등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단가를 받는다. 문제는 납품처가 요구한 규격을 맞추는 것인데 공동포장실을 운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대형마트 등은 일정기간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며 “어느 공장에서 만들더라도 같은 맛을 내는 공동포장실을 운영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포장실에는 수분과 당도를 측정하는 실험기기 등 약 15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천포쥐치포생산자 영어조합법인’은 삼천포 쥐치포의 자율적생산(제조) 또는 가공, 품질향상, 공동판매 촉진활동 및 지리적표시단체표장의 사용 및 관리를 위한 제반사업을 추진하는 대표단체로 지난 2008년 1월 사천시로 부터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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