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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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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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함양 거창사건과 문학작품(續)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 (244)
산청 함양 거창사건과 문학작품(續) 
 
지난 주에 거창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청야’ 제작 팔표회에 따른 관련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거기서 ‘산청 함양사건’과 ‘거창사건’이 동일 사건이라는 것, 두 사건에 대한 배상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는 것, 두 사건 배상은 하나의 법안으로 통합해 통과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양 사건에 관련된 문학작품으로는 ‘겨울 골짜기’ 등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겨울 골짜기’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중도에 이야기를 그쳤다.

그런 후 며칠간 87년에 읽었던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번에 다시 읽기를 하는 가운데 관심은 거창사건의 실체와 얼마나 다른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1951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11사단 9연대의 ‘작명5호’(견벽청야 작전)가 발효되는 시점이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집중해 살폈다. 작가 김원일은 이 사건 전에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거창 신원면을 지나간 것이나 7일 하루동안 산청 함양사건이 있었던 것이나, 산청 함양사건을 일으킨 다음 9일-11일 사흘간에 동부대가 신원면에 재진입하여 이른바 거창사건을 일으킨 것에 대해 비켜가고 있었다. 소설은 픽션(허구)이므로 사실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인과관계만 잘 챙기고 상상으로 미완의 부분을 채우기만 하면 될 터이다.

필자가 1987년에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냥 소설로서 즐기면 되었지만 이번의 다시 읽기는 사정이 달랐다. 그 이후 필자는 거창사건과 동일사건인 ‘산청 함양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물인 ‘산청 함양사건의 전말과 명예회복’을 발간했고 또 두 번에 걸쳐 학술발표회에 참여한 바 있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섭렵이 되어 있는 편이라서 소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상상력의 범위에 대해 진단할 수 있는 눈이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전 6부로 짜여져 있는데 ‘제1부 겨울 들머리, 제2부 들피진 삶, 제3부 전투, 첫경험, 제4부 빼앗긴 사람들, 제5부 하루살이, 제6부 먼 봄, 겨울 끝’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 짜임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보면 ‘제1부 산1, 제2부 마을1, 제3부 산2, 제4부 마을2, 제5부 산3, 제6부 마을3’으로 진행된다. ‘산’은 인민군 315(팔로군)부대 이야기를 말하고 ‘마을’은 거창 신원면 일대의 국군 경찰 진영의 상황을 말한다. 소설이 양자 갈등으로 전개되는 것이고 그 전개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 산과 마을의 대치와 전략과 전투는 승리와 패배, 패배와 복수의 고리를 물고 있다. 그래서 거창신원면 주민들에 대한 11사단 9연대 3대대의 학살행위도 어느샌가 독자들은 이야기의 전율 속으로 들어가 보복차원의 행위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필자로서는 매우 답답한 일이다. 아니 사건으로 희생당한 희생자 유족들로서는 소설이 갖는 메카니즘이 사건의 진실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소설과 역사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실체와의 거리 문제를 논의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소설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서 논의의 방향을 잡아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골짜기’는 1980년대 빨치산 소재의 소설군들, 일테면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더불어 유용한 몫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들 소설군이 독자들에게 선물한 것 중의 하나가 인민군들이나 국군의 진영이 사람 사는 공동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315부대의 한 장면이다. “전사들은 밤보초로 나가면 열차 타러 간다 했고 열두 시간 쉴 때를 고향시간이라 불렀다. 고향시간 동안 전사들은 땔감 두 짐씩만 해다 놓으면 늘어지게 잠을 잤고 밀린 빨래를 했다.” 국군의 경우, 학살을 앞두고도 주인공 문한돌의 아내가 해산을 위한 진통을 할 때 인간적인 행위로 식구들을 교실 뒤쪽 숙직실로 안내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은 점 등은 여러 장면들 중에도 인상적이다.

요즘 문학단체 등에서 문학기행 행사를 자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청군 방곡리에 있는 산청 함양사건 희생자 추모공원이나 거창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 희생자 추모공원을 방문지로 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80년대 말쯤이었을까. 진주 삼현여중 문학동아리(지도교사 박종현 시인) 학생들이 지도교사 지도 아래 ‘겨울 골짜기’를 읽고 사건 현장을 기행했다고 하는데 문학기행의 좋은 선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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