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르지만 가장 느린 길
가장 빠르지만 가장 느린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3.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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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경남대 학보사 편집국장)
“엄마! 같이 가.” 길고 긴 오솔길을 엄마와 딸아이가 함께 걸어간다. 해는 벌써 산 중턱에 걸쳐 있고 갈 길은 먼데 딸아이는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마냥 좋은 듯 자꾸만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운다. 더운 날씨 속에 엄마는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서도 힘든 기색하나 안 보이며 딸아이의 장난을 받아 준다. 그렇게 두 모녀는 다정히 오솔길을 걸어간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한 장면이다. 옛날에는 교통수단이라고 하면 말이 최고였지만, 그조차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날 때는 튼튼한 두발이 최선의 교통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러한 여정을 사람 사는 이치라 여겼고 당연한 순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더욱 좋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세상 어디든지 빠른 시간 내에 오고가곤 한다. 또한 휴대폰과 같은 통신기기의 발달로 아무리 멀리 있는 사람이라도 대화하며 안부를 물어보곤 한다. 사람들이 연구하고 발전시킨 기계문명이 우리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 것이다. 그로 인해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시간활용 능력도 부쩍 증가했다. 현대사회 속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더욱 많은 활동과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데 현대인들은 오히려 하루하루를 쩔쩔매며 더욱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기계의 발달로 하루라는 정확한 기준이 확실히 규정되면서 인간은 그 속에 얽매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그저 자신들이 기계와 기술의 발달로 더욱 편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밖에서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은 뭔가에 항상 쫓기며 살아가는 ‘바쁜 개미일꾼’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면서 더욱 빠른 길을 걷고 있는, 그리고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시간은 무의미하게 보내는 듯한 인상을 주니 말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빠름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안으로 성숙시켜야 할 빠름은 빠트리고 만 것 같다. 그렇기에 디지털이라는 시대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시대는 맞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 자신의 일만 안중에 두며 타인을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고 자기만의 이기주의적 사고로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시대가 바로 디지털시대의 현주소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나는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떠올려 보곤 한다. 지금의 세상에선 그 동화는 마치 미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것으로밖에 안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동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 느리다는 것에 불평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말이다. 그 동화에서 두 모녀가 걸어가는 길은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이었으며 우리들이 놓쳐서는 안 될 삶이었을지 모른다. 바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가장 느리면서도 빠른 길이었고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 다만 행복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들이 깨닫지 못할 뿐이지만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잃어버린 시계추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 보게 된다.

/김대우·경남대 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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