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옥 교수의 운동이야기
권선옥 교수의 운동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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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행-내 몸의 하루
개운하게 잘 잤다. 다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기다림이었고 자신과 스스로 한 약속이었다. 얼마만의 산행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둔 산행이다.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움직이는데 필요한 연료(에너지원)가 될 것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간간이 보이는 매화와 이름 모르는 야생화의 개화는 벌써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고 가끔씩 들려오는 새소리는 더욱 정겨웠다. 휘파람이 저절로 나오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그러나 곧 넙다리가 아파오고 숨이 찼다. 넙다리네갈래근에 젖산이 쌓이고 몸의 산소 요구량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좀 더 올라가기로 했다. 쉴 장소가 마땅치 않기도 하였지만 체력(여기서는 근지구력과 심폐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상의 자극보다 더 큰 부하를 줌으로써 몸은 그 과부하에 적응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좀 더 가야한다. 갈 수 있다고 막상 마음을 고쳐먹으니 힘들다는 생각은 줄어들었다. 세컨드 윈드였다. 마라토너 황영조가 고통을 이겨내고 몬주익 언덕을 넘고 나서 무아지경에서 달리는 상태와 같은. 세컨드 윈드는 내인성 모르핀인 엔돌핀의 분비와 상관이 있다. 엔돌핀은 자신이 즐기는 다양한 취미생활 중에 분비되기도 하지만 심한 고통 속에서도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산등성이를 올라서자 많은 땀이 났다. 기분이 좋았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좀 쉬어 가기로 했다. 지나친 산소 소비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생기고, 지나친 활성산소는 정상세포를 손상시켜 제 기능을 못하게 하거나 변형시켜 각종 질병이나 돌연변이를 유발시키고 노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준비해 간 귤과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었다. 둘 다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어 활성산소를 줄여주는 항산화작용에 효과가 있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나나에는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땀과 함께 배출된 칼륨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근경련 예방 효과까지 있어 일석이조였다.

이제 편평한 길이다. 자신과의 싸움도 쉬어 갈 수 있는 길이다. 한 눈 팔 수 있는 길이다. 바위틈에서도 소나무는 꿋꿋이 자라고 있었고 광합성을 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여 키를 키우는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이제는 관광지가 된 발아래 옹기 굽던 동네를 굽어보기도 하였다. 그 길에 호랑이가 나타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호랑이와 싸울 필요도 없고 도망칠 이유도 없으며 싸워야 되는지 도망가야 되는지 갈등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 반응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한정된 혈액을 뇌와 근육에 과도하게 공급할 필요가 없었다. 혈액은 소화를 시키는데도 동원되고 무좀균과 싸우는데도 동원되었을 것이다.

두어 시간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소풍 왔던 장소였다. 그 때는 맛있는 도시락 먹을 생각에 힘든 것 하나도 몰랐었고 또한 배만 고프지 않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시기였다. 여자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한참 떠들고 노는 사이 얼굴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계시던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힘드셨던 것이다. 그 자리에 누워 청량한 공기를 마시고 청아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하늘을 보았다. 고단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꿀맛 같은 점심이었지만 많이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스트레스 반응 뒤에는 식욕중추가 자극되어 당분을 과도하게 섭취하게 되지만 스트레스가 없고 행복한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는 법, 이제 하산이다. 어느 듯 허리둘레와 엉덩이 둘레가 비슷해진 몸이다. 스틱 준비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산에 오를 때는 3배 정도이지만 내려갈 때는 자기체중의 9배 정도의 부담이 무릎이나 발목에 가해지므로 체중을 팔에 분산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스틱을 잘 사용하여 관절에 큰 부담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내려갈 때가 골밀도를 증대시켜 골다공증 예방에는 더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뼈는 칼슘뿐만 아니라 자극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마지막 휴식이다. 갈증이 생기고 힘이 들었다. 반쯤 탈진상태다. 스포츠 음료를 마셨다. 물보다는 땀으로 소실된 나트륨 등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고 탄수화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신히 그리고 무사히 봄 산행을 마쳤다. 나른한 행복감이 온 몸에 가득하다. 오늘 하루 행복호르몬 세로토닌 분비가 최고였을 것이다. 내일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성장호르몬이 분비될 것이다. 성장호르몬 덕분에 뼈와 근육이 튼튼해질 것이고 연료로 지방을 사용할 것이며 나의 뱃살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봄 산행이 최고다./경상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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