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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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환 (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가끔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의 답은 자연에 있다. 바로 물처럼 살면 된다.

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땅에서 나는 모든 생물은 위로 향해 자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려가기보다는 올라가려고 애쓴다. 그런데 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비가 되어 내린 한 방울의 물이 서로 모여서 아래로 흐른다. 계곡을 지나고 내를 거쳐 강으로 가서 바다에 이른다. 그래서 낮게만 흐른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은 자기보다 높은 족속에게는 자신의 그 어떠한 것도 희생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서 가장 넓고 가장 깊고 가장 큰 바다에 이른다.

물을 흐름에 따라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계곡물과 냇물, 강물 그리고 바닷물이다. 그런데 이 물의 흐름이 우리 인생의 흐름과 꼭 닮았다. 계곡물은 어린이와 닮았고, 냇물은 청년과, 강물은 장년과 닮았다. 그리고 바다는 어른과 닮았다.

계곡물은 흐르는 양이 적고 힘도 약하다. 매우 촐랑거리며 소리도 요란하다. 아주 빠르게 흐른다. 대신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재롱을 떠는 어린이와 같다. 냇물은 제법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여러 골짝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을 모아서 큰 덩치를 이루고 큰 내를 따라 거침없이 흐른다. 어느 정도 속도도 있다. 패기 넘치는 청년과 같다.

강물은 여러 냇물이 모였다. 덩치는 더 커졌지만 물빛이 흐리다.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더 낮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안고 흐르는 듯 안 흐르는 듯 유유히 내려간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더러운 것도, 색깔이 다른 것도 다 품고 함께 간다. 자신에게로 오는 것은 다 안고 흐른다. 천천히 흐른다. 여유가 있다. 그래서 느리지만 힘은 세다. 세상을 깨우친 듯한 장년과 같다.

바다는 어른의 모습이다. 바다는 넓고 깊은 몸으로 모든 것을 다 받아 준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기에 모든 것을 다 받아 준다. 그래서 바다다. 바다는 넓고 깊은 그릇으로 낮은 곳에 서서 강물을 만난다. 흐리고 깨끗하지도 않지만 다 받아들인다. 맛이 달라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런 강물을 스스로 품고서 서서히 자신의 색깔과 자신의 맛으로 바꾸어 간다. 그리고 바다는 다시 자신의 분신을 수증기로 만들어 하늘로 올리고 구름으로 살다가 빗물로 흐르게 한다. 그래서 이순에 이른 어른의 모습과 같다.

나는 지금 강물이 되어 흐른다.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으로 흘러야 한다. 그러니 계곡물과 냇물의 교훈을 안고 천천히 흐를 것이다. 나를 향해 내려오는 모든 것을 품고 함께 흐를 것이다. 더 낮게 흐를 것이다.

/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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