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외면에 틈을 내는 ‘광주’의 노래
폭력과 외면에 틈을 내는 ‘광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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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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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던 광주의 봄’에 미친 사람이 여럿이었다. 눈앞에서 총부리를 맞닥뜨려야 했던 사람도, 국가가 쥐어준 총을 들어야 했던 이들도 그 봄 이후 남은 삶을 포박당했다.

공선옥의 새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는 광풍이 지나간 뒤 모두가 잊고 싶어한 참혹의 자리로 독자를 불러낸다. 저마다 공포와 죄책을 뭉쳐 깔고 앉아서 서로의 앉은 자리를 들춰보지 않으려 할 때 작가는 힘없어 미친 이의 노래로 잊혀진 얼굴들을 불러온다.

“원래 그런 것이다. 난리 난 뒤끝에는 미친년, 미친놈 생기게 마련이여. 세상이 돌아부렀는디 사람인들 온전헐 수가 있가디. 그중에 특별히 더 모진 꼴 당해불면 미쳐불제.”(114쪽)

아버지가 객지에 일하러 나간 사이 이웃 아저씨들에게 돼지도 뺏기고 닭도 뺏기고 성폭행도 당하는 정애는 시내로 나가 살 길을 도모하지만 ‘군인들이 사람들을 두들겨패고 죽이던 봄’을 지나 미쳐버린다. 정애는 ‘아바아바사융기샹가바’ 같이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며 고통을 토해내지만 이웃의 폭력은 계속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애에게 달려들어 필요한 것을 취해갈 때마다 정애는 노래한다. 정애의 노래는 허공을 향해 내지르는 앞뒤 없는 혼잣말 같지만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폭력을 고발한다.

정애의 노래가 끊어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165쪽)이었다.

무력해 보이는 정애의 노래는 공고하게 이어지는 폭력과 외면에 틈을 낸다. 눈 감고 귀 막으려는 이들이 꾹꾹 눌러둔 죄책감을 일렁이게 하고 모른 척 바쁘게 갈 길 가는 사람을 불러세운다.

이발소 주인이 정애네 집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돼지를 훔쳐 잡아먹은 뒤 어린 정애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우리 집 다무락(담)에 도야지 피는 끈적끈적 이발소 솥단지에 도야지 지름이 찐덕찐덕’.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 아이들이 뭣 모르고 같은 노래를 부르면 어른들이 쫓아와 등짝을 후려친다. 그 시절을 함께 겪은 사람들은 이 노래에 정애의 피눈물이, 힘없어 당한 이들의 울음이 섞여 있는 것을 감지하지만 외면하는 쪽을 택해 노래하는 입을 틀어막는다.

사람들이 죽고 울고 미쳤던 광주의 그 봄을 작가는 정애의 노래로 눈앞에 데려왔다.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썼다.

창비. 262쪽. 1만3천원.

연합뉴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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