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분 곤충노릇도 배 맛 보려면 필수
인공수분 곤충노릇도 배 맛 보려면 필수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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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귀농일지> 배꽃 인공수분 작업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주말 비가 그친 후부터 계속된 낮은 기온이 강한바람과 함께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럽다. 절정을 치닫던 벚꽃도 한 차례 비바람에 속절없이 그 화려함을 날려 보내고 말았다. 화사한 꽃망울이 아름답다고 말하면 부정이라도 탈까 봐 마음 졸이며 만개를 기다리던 배꽃은 겉모습과 다르게 늦추위에 속까지 새까맣게 타고 말았다. 늦가을 된서리에 어제까지 새파랗게 살아있던 고구마 줄기며 피마자 잎이 끊는 물에 데쳐놓듯 새까맣게 변하며 생명을 다하는 모습은 흔하게 보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춘삼월 호시절에 찾아 온 늦추위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배꽃이 씨방까지 얼어 피해를 입는 경우는 흔치 않는 현상이다. 공기의 흐름이 원활한 높은 곳 보다는 낮은 골짜기에 위치한 과수원에 피해가 더 심하다. 막 싹이 트기 시작한 감자랑 텃밭에 이식한 각종 채소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탐스럽게 새순을 내밀든 고사리도 간밤의 늦추위에 얼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늦추위에 피해를 입었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웃 과수원에서는 매일 영양제를 뿌리고 탄화물도 주며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우리 과수원은 천수답을 일구어 배나무를 심은 곳이라 그냥 두면 꽃가루받이가 원활치 못해 결실율이 현저히 떨어지던 곳이다. 늦추위 피해까지 입었으니 그냥두면 안될 것 같아 오늘내일 미루어 왔던 인공수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특히 신고는 다른 배와 달리 자가수정이 어려워 수분수가 부족한 곳은 인공수분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꽃이 피면 많은 벌이 날아와 그냥 두어도 결실이 잘 되었다. 수분수가 부족해도 벌을 비롯한 곤충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주어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때는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이 겁나 꽃이 만개한 과수원을 드나들기가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과수원에 날아다니는 벌조차 구경하기 힘들다. 벌이 찾지 않으면서 곤충이 하던 일을 사람이 대신해야만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인공수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꽃가루를 만들어야 하는데 채취하는 방법도 어렵고 힘이 들어 이웃에 사는 동네 형님께 부탁해서 구입했다. 입수한 꽃가루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다 작업 하루 전날 꺼내 습도가 높고 어두운 곳에서 순화를 시켜야 한다. 작업하기 직전에 분홍색 증량제와 순화시킨 꽃가루를 섞어 프라스틱통에 담아 과수원로 갔다.

과수원은 매일 지나다니며 보던 곳이라 절반을 넘게 피었을 때를 맞춰 준비했다. 과수원에 도착하여 꽃을 보니 늦추위 피해가 생각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보통 인공수분 작업을 할 때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꽃가루를 꽃에 뿌리거나 묻히면 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전한 꽃을 찾기가 힘들다. 떨어져서 보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암술과 씨방이 얼어 새까맣게 변해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작업을 포기할까 생각하다 그동안 한 일이 아까워 성한 꽃을 찾아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싱싱한 꽃을 찾아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혔더라도 이미 추위에 노출 되었던 꽃이라 온전하게 열매로 자랄 수 있을지 미심쩍다. 작업을 하다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아가 물으니 예전에도 이런 경우를 당해보기도 했지만 종자가 될 만큼은 열렸다며 지금은 알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한 후 기다려보자고 한다.

꽃을 하나하나 관찰해가며 하는 작업이라 더딜 수밖에 없었다. 조제한 꽃가루는 그냥 두면 버리게 되기 때문에 서둘러 작업을 해야만 했다.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준비해간 꽃가루로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오후에는 멀리 다른 곳에서 배 농사를 짓는 분이 찾아와 둘러보고는 피해가 심한 것 같다며 걱정을 해 주고 돌아갔다. 역시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되는 것이지 노력만으론 극복이 어렵다고도 했다.

그동안 엄두를 못 냈던 도라지 밭에 쑥과 잡초를 매었다. 다행히 지난 주말 내린 비에 딱딱하게 굳었던 흙이 부드러워지며 김매기가 훨씬 쉬웠다. 한 번 시도 했다가 너무 힘이 들어 때가 되면 반찬용으로 파먹고 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내버려 두었던 곳이다. 도라지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새싹을 막 내밀고 있던 중이라 얽힌 쑥 뿌리를 잔디를 말 듯 걷어 낼 수 있었다.

묵혔던 밭을 다시 한 번 관리기로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갈아엎었다. 텃밭 귀퉁이에는 토란을 심고 앞 둑에는 옥수수도 심었다. 서리 피해가 나지 않을 만큼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것저것 골라 남은 땅에 심어 볼 참이다.

/정찬효 전 농협진주시지부장

배꽃수정작업
귀농초보자가 배꽃 인공수분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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