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 산다 산다…'산다화'
산다 산다 산다…'산다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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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내가 사는 진주 금산은 산수유를 필두로 동백, 진달래, 매화로 봄을 알리기 시작하여 개나리와 벚꽃으로 온 천지를 화려하게 밤낮을 빛내다 연분홍 꽃비를 내리고, 온 산을 배꽃과 복사꽃으로 마무리를 하고 비가 한바탕 오고 나면 어느새 여름이 저만치 와 있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유달리 봄소식이 늦는 것만 같다. 봄꽃들은 이미 왔다 저만치 물러가고 있는데 내 마음이 그런 것인지 세상이 어수선한 것인지 우리 집 옷장의 겨울옷들도 옷장 속 옷걸이에 그대로 있어 언제쯤 봄옷을 입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올 겨울부터 올 봄까지 날이 추워 그런지 연세가 많으신 3촌뻘 어르신 두 분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병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결국 먼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내게 있어 또 한 분의 어머니이신 지도교수님마저 유방암 재발로 먼 길을 떠나셨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시집가는 내게 당신이 친정엄마이니 걱정 말라 하시던 교수님. 이미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기에 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사람의 연을 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 항상 남게 되는 회한과 후회를 이번에는 하지 않기 위해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으면서도, 나 살기 바빠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그 후회를 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인간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교수님 49제 때문에 토요일은 운문사에서 하루를 보내고 왔다. 생전에 운문사 스님들과 교류가 있었던 터라 교수님의 가시는 길은 운문사에서 진행되었다. 깊은 산속의 절은 상춘객들로 가득했고, 주말이 끼여서 그런지 전국에서 많은 제자들과 전공 식구들이 와주어 정말 행복하게 교수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셨던 교수님. 제자 중 단 한명도 교수님께 식사대접을 해드린 기억이 없을 정도로 항상 밥값은 교수님 몫이셨고, 당신 제자들의 먹고 살 궁리를 당신이 다하셨던 교수님. 늘 검소하셨지만 남에게 베푸는 일만큼은 아낌 없으셨던 교수님. 심지어 당신을 만나러 오는 마지막 길에 부의금조차 못 받게 하시고 오히려 당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꽃 편지지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에 오만원을 차비로 준비해 놓으셨던 교수님.

이대로 당신을 보낼 수 없어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한 기억과 사진들을 모아 만든 추모집과 사진첩들을 꺼내보면서 교수님의 삶이 ‘산다화’를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산다화는 흔히 ‘동백’이라고 불린다. 한겨울 북풍한설 속에서 피우는 붉은색의 동백꽃은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겨울을 견디고 희망의 봄을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꽃이기도 하다. 또 꽃이 질 때 시들지 않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떨어지기 때문에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나무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래서 동백의 꽃말이 ‘신뢰’인가.

근데 나는 동백꽃이 힘겨운 날씨를 버티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다 산다 산다…’라고 자기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부여하기 때문에 ‘산다화’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운문사 주지스님이신 일진 스님께서도 교수님의 삶을 두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과 열정’이라고 하셨다. 그 힘든 병마와 싸우고 계실 때도 언제나 웃고 계셨고, 암이 발병하기 전까지 일주일에 이삼일은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실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다.

힘든 삶을 견디고 이겨내시는 삶을 사신 교수님. 산다화 같은 교수님. 교수님의 제자였던 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려워 도망도 치고 했었지만 교수님의 제자였던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젠 저도 교수님의 삶을 거울삼아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제자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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