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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황금세대’의 든든한 살림꾼<경남축구열전> 꿈을 가진 지도자 김귀화
박성민  |  smworld17@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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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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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청 김귀화 감독. 사진=황선필기자
 
지난해 여름 런던 땅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올림픽 팀이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20여 년전 우리는 그 날의 환호를 좀 일찍 가질 기회가 있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금세대 였던 주역들이 독일의 선진 축구를 체득하고 올림픽에 도전한 것이다. 그곳에 서정원, 노정윤, 강철, 이임생 등과 함께 92년 황금세대를 주름 잡던 김귀화(44) 김해시청 감독이 있었다. 조광래 감독과 경남FC 이끌던 또 한명의 경남의 레전드를 장유체육공원 운동장을 찾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 공차기가 즐거웠던 아이, 축구를 꿈꾸다

공 하나만 있으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었던 아이는 공을 차는 자체가 즐거웠다. 어린시절 빠른 스피드로 학교 넓이뛰기, 100m 대표 등 기초종목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아이는 대산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 축구팀이 창단되자 주저 없이 축구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배구부 유니폼을 물려 받은 등번호 ‘0’번의 유니폼을 손에 받아 들자 소년은 너무나 설레였다. 설렘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축구는 재미를 넘어 재능으로 이어지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금세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김귀화. 그는 대산중학교 시절 청룡기 우승을 이끌며 축구에 눈을 뜬다. 스카우트 제도가 있던 시절 원래 실력을 인정받아 창신공고행이 결정됐다. 그러나 대우재단이 후원하는 거제고등학교가 축구팀을 창단했고 중학교 팀 전체가 인연을 맺으며 거제고로 진학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우와의 인연은 아주대학교, 대우로얄즈로 이어지며 그의 축구인생의 반쪽으로 자리잡았다.

◇ 명장과 함께한 92년 세대의 추억

대우에 입단한 그는 첫해 선배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 맛 보며 프로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대우는 김주성, 이태호, 정해원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타들로 즐비했고 명문구단으로서 위상이 높았다. 그는 “처음 들어가니까 선배들을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하늘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대우에서 1번의 우승을 더 경험한 김 감독은 2000년 안양LG 주장으로 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 감독은 최고 멤버 구성으로 평가받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팀의 주역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의 명장 크라머 감독에게 선진축구를 배우며 다시 한번 축구에 눈을 떴다.

“정원이(서정원 수원 감독)가 크라머 감독님과 연락을 하는데 아직도 정정하시고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그때 참 할아버지 같고 편하게 해주셨고 세계적인 명장이셨기 때문에 훈련을 가더라도 네임벨류가 높은 팀과 경기를 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며 “그때는 축구가 참 재미 있었다”고 잠시 옛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김 감독은 크라머 감독이 본선까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당시에 노정윤, 서정원, 신태용, 이임생 등 멤버가 정말 탄탄했다. 모로코, 스웨덴, 파라과이와 3무를 기록했는데 경기내용도 모두 좋았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크다. 만약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면 8강 정도는 가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세 번의 프로팀 우승과 올림픽 대표를 경험한 김 감독은 2000년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한다. 그의 나이 30살. 지금 같으면 한창 무르익을 나이였다. 그러나 그런 그를 넘어뜨린 건 부상이었다. 두 번의 수술을 경험한 고질적인 발목은 그를 지도자의 길도 안내하는 아이러니를 가져왔다. “선수생활 욕심이 있어서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발목 상태가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이기엔 무리였고 지도자가 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귀화 감독이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사진=황선필 기자

◇ 꿈을 가진 지도자로 ‘현재 진행형’

“나의 지향점은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한 경기를 지배하는 경기력이다. 개인기가 기본적으로 탑재된 좋은 선수를 길러낼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김 감독은 FC서울에서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고명진, 고요한, 이청용 등 중학교를 중퇴하고 축구에 올인 한 선수들을 키우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3년 동안 각국 에이전트들이 하는 경기에 참가했다. 레알마드리드, 유고 파르티잔 등 유럽 유수의 유소년 팀들과 시합을 해도 아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첫 해 4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이뤄냈다”며 “결국 그 아이들이 한국축구의 미래로 성장해 뿌듯하다”고 지도자로서 보람을 드러냈다.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쌓던 김 감독은 2008년 조광래 감독의 “같이 가자” 한 마디에 고향 경남으로 둥지를 옮겼다. ‘조광래 유치원’으로 불리던 경남의 선수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워갔다. 그는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로 감독으로 옮긴 이후 6개월 간 감독 대행으로 경남을 이끌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

“6개월 동안 대행을 하면서 감독에 대한 마음을 그때부터 이해하기 시작했다. 감독으로서 모자란 부분도 느껴지고 게임마다 감독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대구FC 수석코치로 자리 옮긴 그는 김해로 내려와 젊고 어린 선수들의 조련사로 변신했다. 그는 경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훌륭한 선수를 길러내고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경기력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남 FC에서도 일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지난 경남에서의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FA컵 64강전으로 승리로 이끈 김 감독은 깜짝 이변을 기대해 달라며 각오의 말을 전했다. “챌린저 리그 독보적인 팀과의 어웨이 경기에서 승리해 사기가 높아 32강 추점 여하에 따라 이변을 기대해도 좋다. 내셔널리그에서도 아직 22경기가 남았고 동계 훈련에서도 프로팀에 쉽게 지지 않아 4강, 나아가 우승을 바라보고 김해시민이 좋아하는 가능성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늘도 김 감독은 자신의 꿈을 그리며 새로운 도전에 매진 중이다.


김귀화는
출생= 1970년 3월 15일 김해 진영
학교= 대산초-대산중-거제고-아주대 (DF)
선수경력= 대우로얄즈(1991~1997), FC서울(1998~2000), U-20 국가대표, 92 바르셀로나 올림픽국가대표
지도자경력=경남FC 코치(2008~2009), 경남FC 수석코치 및 감독대행(2010),대구FC(2011)
현 김해시청 감독(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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