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늦었지만 시급한 이유
협업, 늦었지만 시급한 이유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찬규 (창원대학교 총장)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칸막이 허물기’라는 슬로건 아래 행정협업시스템 구축을 천명하고, 177개의 협업과제를 선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학에서 행정을 총괄하면서 항상 아쉽게 느껴왔었던 사항이 정부 주도로 확산된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협업(collaboration)의 발단은 기업에서 신제품 개발기간을 단축시키고 원가절감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1980년경부터 시도되었던 동시공학 (Concurrent Engineering)의 개념이라고 하겠다. 동시공학이란 제품 설계단계에서부터 영업, 연구개발, 생산, 생산기술, 구매 등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들이 참여하여 신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좀 더 총체적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제품 개발은 연구개발 부서에서 수행하는 것이었으며, 완성된 도면을 생산기술부서에서 받아 검토한 후 잘못된 점이 있으면 다시 연구개발부서로 돌려보내고, 수정된 도면을 생산부서에서 받아 문제점이 발생하면 다시 돌려보내고 하는 과정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서로 주고받는 반복과정 속에서 신제품 개발기간도 길어지고, 개발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양산단계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사용하는 단계에서 발견되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부서간의 장벽을 없애고 공조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 동시공학의 목표였다.

협업은 동시공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조직과 공간을 초월하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업들이 처음부터 참여하자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동일 회사의 조직 내에서 업무의 협조가 이뤄진 반면에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 분야의 최고들이 모여서 일을 추진한다고 하는 확대된 개념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마켓 분석은 미국에서, 디자인 개발은 한국에서, 부품설계는 유럽에서, 부품생산은 중국에서, 조립은 남미에서 하는 것은 이제 전혀 낯선 방식이 아니다. 물론 이와 같은 협업의 확산에는 컴퓨터그래픽, 인터넷 기술을 포함하는 IT기술의 발전이 큰 공헌을 했는데, 인터넷을 이용해 제품의 3D 모델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전 세계의 관련자들이 토론하면서 즉시 설계변경을 하는 과정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에 신차를 개발하는 기간이 3~4년씩 걸리던 것이 근래에 2년 내외로 단축된 것을 보더라도 IT기술을 활용한 협업의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협업이 아직까지도 활성화되지 않은 대표적 분야는 공공서비스부문이다. 아마 민원해결을 위해 자치단체나 정부부서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복잡한 처리 절차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이나 교수에게 원스톱(One Stop)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노력을 하고 있지만 행정처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총장인 나도 답답할 때가 많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사립대학에 비해 좀 더 심각할 것이다.

이와 같이 공공부문에서 부서간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치게 규정화된 업무분장과 이에 따른 책임소재 및 감사에 대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전향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나중에 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깔려있다.

이번에 정부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업시스템이 공직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관심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서로 상대방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서로 도움으로써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조직에서는 지나치게 일의 결과만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해 주어야 한다. 각 부서들이 얼마나 협업을 잘 하는지 감사를 하는 방법보다는 각 부서들이 협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대국민 서비스가 향상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창원대학교에서도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부서간의 장벽을 허물고 협업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할 것임을 약속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