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의 향완은 어떻게 진주에 오게 됐나
신덕왕후의 향완은 어떻게 진주에 오게 됐나
  • 강민중
  • 승인 2013.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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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부처님 오시다’전 조선초기 불교문화 전시
▲목조여래좌상,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국립중앙박물관소장)(왼쪽부터)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진화수)은 23일부터 6월2일까지 불기 2557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해 특별전시‘부처님 오시다’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온화한 얼굴 표현과 눈을 가늘게 뜨고 명상하는 모습의 목조여래좌상(木造如來坐像) 두 점과,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명복을 빌고 왕생극락을 기원하기 위해 1397년(태조 6)에 제작된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靑銅銀入絲靑谷社銘香琓)이 전시된다.

목조여래좌상은 크기와 양식이 거의 동일한 작품으로 동시기에 제작된 삼존불(三尊佛) 가운데 좌우의 협시불로 추정되며 손모양만 반대로 돼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에 비해 불신(佛身)과 불두(佛頭)가 크고,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숙여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두꺼운 대의(大衣)의 주름이 간략하게 처리됐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돼 있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었으며, 양손은 몸체에 비해 작게 묘사돼 있다.

향완은 부처님께 향을 피워 공양할 때 쓰는 것으로, 이 향완은 만든 경위와 연대가 분명하고 화려한 은입사 문양이 뛰어난 명품이다.

이 향완이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신덕왕후의 본향은 곡산강씨(谷山康氏)임에도 명문의 내용대로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잘못 알고 만든 것이고, 그 연유로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이 오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발견된다. 태조실록에서는 분명히 곡산강씨로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향완과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진주강씨로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진주는 신덕왕후 어머니의 본향이다.

이 향완은 오는 6월부터 ‘한국문화재 터키전’전시에 출품될 예정으로 국립진주박물관에서는 5월 26일까지만 전시된다.

진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아름다움과 수준 높은 조형미를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향완을 통해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에 얽혀 있는 조선 개국 초기의 역사적 긴박함뿐만 아니라 명문에 나오는 비구(比丘), 상총(尙聰)과 김사행(金師幸) 등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조선(태조 6년, 1397), 높이 39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목조여래좌상‘조선(17~18세기), 높이 94.0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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