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곽재우를 존경한다
시인 곽재우를 존경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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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환 (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난 곽재우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 인간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사상과 철학적인 모든 면에서 장군을 존경한다. 그래서 충익사에 근무하면서 장군의 업적과 그 뜻을 기리고 장군의 사상과 철학을 받들며 살아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인 곽재우는 장군이기 이전에 선비요, 시인이었다.

장군은 어릴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1552년 8월 28일 외가인 의령군 유곡면 세간마을에서 정암공인 곽월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자 아버지는 의령군 가례면 가례리가 처가인 퇴계 이황 선생의 사촌 처제와 결혼을 하게 되니, 퇴계 선생은 종이모부가 된다. 또한 자굴산 보리사에서 남명 조식 선생으로부터 공부를 했고 열여섯 살에 선생의 외손녀와 결혼을 했으니 남명 선생은 스승이자 처외조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상과 철학을 겸비한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고 수하에 의병을 이끌고 거름강 전투를 비롯해 정암진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이끌며 위기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했다. 그러다 보니 벼슬도 받게 된다. 정유재란 때는 경상좌도 방어사란 관직을 받아 화왕산성을 지키게 된다. 이후 모두 스물아홉 차례에 걸쳐 벼슬을 받았으나 열다섯 번은 나아가고 열네 번은 나아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자 의병으로서의 역할이 끝났다는 이유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 자연을 벗삼아 야인생활을 하며 살게 된다.

특히 화왕산성에서 새어머니가 사망하자 장례를 치르고 벼슬을 버린 후 울진으로 가서 패랭이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 당시 큰 위세를 떨칠 수 있었음에도 신분을 감추고 스스로 패랭이를 만들며 자신의 끼니를 직접 해결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인품과 덕망을 겸비한 겸손한 선비정신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창녕군 도천면 낙동강변 야산에 아주 작은 정자를 짓고 스스로 망우정이라 하여 솔잎 등을 먹으며 조용히 세상을 지내다 예장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1617년 66세의 일기로 하직하게 된다.

붉은 비단 옷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으로 스스로 천강 홍의장군이라 칭하며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켜냈다. 본가인 현풍에는 장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예연서원이 있고, 태어난 의령에는 생가를 비롯해 장군과 휘하 17장수 및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가 있다. 그리고 창녕에는 마지막 생을 보냈던 망우정이 있다.

자연주의 사상을 추구한 시인이었던 장군은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서른일곱 편의 시를 지난 2009년 의령군에서 한시와 번역시를 함께 수록한 ‘강정으로 돌아오다-歸江亭’란 시집을 낸 바 있다. 특히 장군의 위대한 사상과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의령군에서는 시와 소설 등 5개 부문으로 2009년 제정한 천강문학상을 매년 운영하고 있다./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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