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젠틀맨’과 대중문화 읽기
싸이의 ‘젠틀맨’과 대중문화 읽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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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언론마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을 두고 문화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작년 한 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의 ‘강남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다 보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히 평론의 양이 많고 다양하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지 시비 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평론이 너무 선정적인 한탕주의 상품성에 기대고 있고, 어떤 것들은 심기 불편한 어른 훈계조 평론이라는 점이 문제다. 물론 정반대의 시각도 있긴 하지만 새로운 문화읽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개 그들의 비평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외국의 기사들의 선정성에 기대어 대중을 자극해 한탕 재미 좀 보자는 그런 글이다. 가령 싸이의 외모와 김정은의 뚱뚱한 외모가 비슷하다는 외양을 가지고 그 속을 멋대로 비교해 해석하는 그런 류 말이다. 인용한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둘 다 통통하고 둥근 얼굴에 턱살 붙은 허연 살결에다가 쌍꺼풀 없는 눈매, 치켜세운 앞머리까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인용한 글을 문제 삼는 것은 서양기자의 시선을 재탕해서 재미삼아 재생산하는 일이 우리 기자들이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하는데 있다. 가디언스 기자 같은 서양인들이야 우리 동양인 외모 차이를 알 턱이 없다. 그러니 그들이 사람 외모조차 구별 못하는 시각적인 결함을 되치지는 못할망정 왜 둘의 행동이 그렇게 차이가 나느냐고 조롱조로 다룬 외신에 보태어 ‘견디기 어렵도록 세상은 매일 흥미롭다’고 결론 짓는 논평은 정말 한심하다.

순발력 있는 따끈따끈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실어 나르다 보면 미처 생각이 못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영합해 재탕 해낸 기사가 부지기수인 것은 곤란하다. 정확히 보면 가디언스지가 생산한 기사는 비교의 등가(等價)수준을 상실한 해석이다. 그런 류의 해석은 현실을 왜곡할 뿐이다. 이미 같은 신문이 ‘강남 스타일’의 인기가 동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자민족주의 시각의 논평을 한 바 있지 않은가. 앞의 논평이 실린 ‘강남 스타일이 뭐가 그리 웃긴가’라는 질문은 모두 웃는데 혼자 웃지 못한 바보나 할 말이다. 상대적 문화읽기의 시각이 부족하다면 그런 기사는 쓰레기통에나 처넣었어야 할 일이다.

다른 한 가지는 ‘젠틀맨’을 두고 훈계조에 더해 자극적인 감정을 실은 글들이다. 다양한 시각의 논평은 많을수록 좋다. ‘젠틀맨’을 두고 포르노그래피에 의존한 선정주의를 문제 삼을 수도 있고, 반대로 B급 키치문화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깔려 있다는 평가도 좋다. 주차금지 표지판을 차는 장면이 공공시설물을 훼손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을 두고 너무 심한 처사라고 청소년들이 ‘꼰대’적 시각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다양한 시선이다. 하지만 싸이의 ‘젠틀맨’이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진다고 ‘창피한 일이다’고 하는 것은 무례한 편견이다. 그런 시선은 ‘젠틀맨’을 저급문화로 평가절하해 철없는 아이들의 농익지 못한 짓거리라 깔보는 불편한 시선에 불과하다.

젠틀맨은 대중문화 코드에 맞추어 생산된 상품이다. 젠틀맨의 상품성은 기존 상식에 묶여 지배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이른바 신상(新商)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말대로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웃음을 주는 엔터테이너가 찧고 까불어 한바탕 신나게 놀게 해주면 그만이다. 어떤 비평가가 내린 밋밋하다는 느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밋밋한 리듬 자체에 취해 빠져들게 하지 않는가. 싸이가 만드는 ‘시건방진 춤’을 추는 무대는 뻔한 문화코드지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놀이터를 제공하지 않는가.

대중문화 속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상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고급문화 취향에 속하는 것인가, 낮은 수준의 문화인가 격을 나누는 문제에 국한시켜 다룰 바가 못된다. 특정집단에게 유리한 취향에 맞게 꾸며진 것도 아니고, 기존 상식에 묶여 그동안 지배해온 권력에 무작정 복종되는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각 영역을 넘나들며 경쟁하는 장이다. 대중문화는 늘 경쟁하고 가변적이며, 그 내부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요소들이 배회한다. 당연히 ‘젠틀맨’의 문화읽기는 싸이에 열광하는 대중의 몫이라는 인식에서 그들에게 되돌려 놓아야 제대로 읽힌다. 싸이가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젠틀맨’은 가디언지를 발행하는 나라에서 온 ‘영국신사’가 아니라 새로운 ‘싸이식 신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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