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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보인다더니 안개속 산행은 상상의 바다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49>해남 두륜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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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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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치스 내셔널 파크와 서부의 밸리 오브 파이어, 그랜드 캐년과 같은 지형은 지구 탄생 수십억년동안 이어진 바람, 비, 구름, 땅의 용틀임으로 형성된 전무후무한 걸작품이다. 아치형 터널을 비롯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형상이 대지를 장식한다.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풀이가 가능하다한들 갖가지 형상은 가히 초자연적이다.

사람들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에 매료돼 탄성을 지른다. ‘영성(靈性)의 작품’이라거나 ‘바람의 조각품’이라거나 하는 갖은 표현으로 미화하며 때로는 경외심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여행지에 대해 죽기 전에 가봐야할 곳, 버킷리스트 상위클래스에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의 산에는 그런 곳이 없을까. 두륜산은 천년고찰 대흥사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하나 있다. 자연이 만든 아치(arch)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구름다리라고 부른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위가 아치를 이뤄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르는 쪽에서 보면 두 마리의 동물이 서로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이 코믹하다.

이 산이 품은 대흥사는 신라 천년고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이며 과거 대둔사로 불렀다. 이외 천연기념물 173호 두륜산 왕벚나무자생지, 뿌리가 붙어 한 몸이 된 연리근이 볼거리다. 산에 오르면 만날수 있는 기묘한 바위들, 만일암지 5층석탑, 사찰의 탄생과 중창, 화마로 소실된 당우의 중건을 지켜본 천년수까지.

#두륜산(가련봉 703m)은 전남 해남에 위치하고 있으며 달마산과 함께 남도 최고의 명산으로 꼽힌다. 봉우리들은 바위와 벼랑이 절정을 이루는 반면 만일재를 사이에 두고 양쪽 사면은 동양적인 곡선미를 자랑한다.

대흥사에서 바라보면 왼쪽부터 고계봉(638m) 노승봉(685m) 가련봉(703m 주봉)만일재 두륜봉(630m)구름다리의 연봉이 창연(敞然)한 마루금을 형성한다. 전체적으로 부처님의 와불형태라고 한다.

도내에서 두륜산을 가려면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에서 빠져 신설한 영암순천고속도로를 이용하면된다. 사천 진주를 기준으로 2시간 20여분이 소요된다.

#산행은 지난 20일 실시했으며 궂은 날씨로 인해 산행코스가 바뀌는 등 제약을 받았다. 대흥사 주차장까지 차가간다. 대흥사→일지암→만일암터(천년수)→만일재→가련봉→만일재→구름다리→두륜봉→진불암→상원암→대흥사 회귀 휴식시간 포함 4시간30여분이 소요됐다.

▲두륜산 최고의 명소 구름다리


#차창을 때리는 굵은 비가 가슴까지 후볐다. 도착했을 때도 비는 계속됐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우산까지 받쳐든 8명의 산우들의 모양새가 조금은 을씨년스럽지만 오랜만의 산행에 의욕을 보인다. 그래도 곡우 무렵 내리는 목비라니 돈비라고 위안한다.

절집을 뒤로하고 등산로에 들어서면 동백과 후박나무숲이 앞을 가린다. 핏빛 동백은 때아닌 소나기를 두들겨 맞아 대부분 땅에 쳐박혔고 마저 남은 동백은 바람에 건들거려 위태롭다.

곧장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방향이 북미륵암과 오심재를 거쳐 가련봉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중장비로 도로정비공사가 한창인 오른쪽은 일지암을 거쳐 만일암터, 만일재로 바로 가는 코스.

출발 후 약 1시간 남짓 2km 못미친 지점에서 천년수와 ‘만일암터’를 만난다. 이름이 찬란하다. 지리산 자락에는 ‘달을 끌어당긴다’는 인월이 있는데, 여기는 끌만(挽)을 써서 ‘해를 끌어당기는 암자’라고 한다. 해와 달은 인류의 희망, 이상의 존재임이 틀림없다. 만일암터 숲속에서 높이 5.4m짜리 석탑과 조우한다. 대개 3층석탑인데 표현양식으로 미뤄 백제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우물과 깨진 석등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천년수는 바로 밑에 있다. 1200년∼1500년 수령을 자랑한다. 산아래 대흥사의 탄생과 함께한 산증목(?)이다. 절의 탄생과 중창, 화마로 소실된 절집의 영고를 지켜봤으리라.

곧바로 만일재, 큰 헬기장이 있을 정도로 넓고 평평하다. 과거 대흥사와 북일면을 연결하는 삶의 통로였다. 등산객 고단한 길손의 휴식장소로 손색이 없다.

비는 짙은 안개로 바뀌었다.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애시당초 버렸지만 그래도 앞이 잘 안보이니 날씨가 원망스럽다.

산우들은 왼쪽 주봉인 가련봉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안개사이로 불쑥 불쑥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이 산의 자랑거리 암릉이리라 추측할 뿐, 산을 느끼고 자실 방법이 달리없다. 가련봉까지 그런 암릉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몇차례 반복한다. 곧이어 너덜지대, 바위를 안고 가야할만큼 미끄럽고 위험하다.

빗물에 젖은 바위와 차가운 날씨,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까지, 몸은 으슬하고 손가락은 시리다. 산행의 조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전산행을 위해 바위에 박아둔 O링이 이채롭다. 너무 가파른 나머지 등산로 정상부근에는 데크를 설치해 등산객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출발 2시간이 넘어서면 주봉 가련봉. 바위 위를 기어가듯 수고스럽게 정상에 닿아도 야속하게도 보이는 건 안개뿐이다.

맑은 날, 지리산과 남해금산, 더 멀리 제주도 한라산도 보인다고 한다. 인근의 제암산과 천관산 영암 월출산 등 연봉들도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남도의 다도해가 올망졸망 다가온다고. 허나, 안보이니 허망한 상상에 불과하다.
▲대흥사와 두륜산 전경

“4월인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산행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얼어죽을 뻔 했어요. 앞이 안보여서 길도 잃었고요”

서울에서 와 인근에서 1박하고 8시부터 산행해 12시께 정상에 닿았다는 홀로 산행객의 모습이 초췌해 보였다. 아무리 작고 낮은 산이라도 방심해선 안된다는 교훈이 스친다. 이런 날씨에는 누구나 저체온증을 주의해야하고 이에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만일재로 회귀하는 산행은 미끄러움 때문에 평소보다 더 힘겨웠다. 만일재에서 구름다리와 두륜봉방향으로 오르는 길은 두루뭉실 곡선미가 빼어나다. 고도와 경사도를 서서히 높인다.

두륜봉 정상에 다다를 무렵, 숨은 가빠지고 동시에 기암괴석 암벽이 나온다. 이 산 최고의 자랑거리 구름다리는 고개를 들면 갑자기 보인다. 이 다리, 반전의 매력이 있다. 숨가쁜 된비알을 올라 철계단과 터널을 지나서 돌아보면 웅장한 모습의 아치가 보인다. 반전의 매력은 뒤편에 있다. 다시 돌아서 아치를 지나 철제다리에 서서 보면 바위가 하나가 아니라 2개가 붙어있다. 그 모습이 마치 동물 2마리가 서로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이 만들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모습이라고 할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의외다. 구름다리에서 조금 이동하면 두륜봉, 역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정상조망을 볼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다.

만일암 터 5층 석탑과 천년수



#전남에는 ‘해태철 개도 백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속담이 있다. 이곳에는 눈에 띄는 것이 모두 동백꽃이요 동백이다. 물에도 동백이요, 돌틈사이를 비집고 자란 것도 동백이다. 계곡 풍부한 물이 울창한 동백·후박나무 숲을 만들었다.

등산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덕분에 비교적 넓고 안내표지판도 잘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절집으로 회귀했을 때 자투리 찻잎을 따는 스님에게 “왕벚나무자생지가 어딥니까.”했더니 “산에 있겠죠”. 우문에 현답인지 스스로도 머쓱하다.

조금 더 내려와 절집 마당에 초의 선사의 동상이 있고 그가 차를 달일 때 쓰던 ‘유천’이라는 샘이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40년 동안 기거하며 다신전, 동다송을 펴내 차문화를 부흥시켰다. 불교와 실학의 접목, 쇠락해가는 불교를 부흥시켰다. 서화에 능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교류했다.

#대흥사에서 봐야할 것이 편액이다. 대웅전 걸려 있는 대웅보전은 조선후기 명필 이광사의 글씨로 곡절을 겪었다. 당대 최고의 명필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가던 길에 이곳에 들렀다. 그는 돌연 이광사 편액을 떼게하고 자신의 것을 걸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어느날 그가 돌아가던 길에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었다. 이 일화는 ‘겸손’의 의미를 지금도 세상에 던진다. 추사의 친필 무량수각은 백설당에 걸렸다. 표충사는 정조의 것이다.

서산대사 휴정은 이 절에 의발(가사와 바리때)을 전했다. 그의 흔적은 절집을 다 나와서 보이는 부도군 끄트머리에 있다. ‘청허당 승탑’이라고 돼 있다.

휴정의 해탈 시 일부가 마당에 어딘가에 걸려 있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오/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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