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과 권력의 속성
동물농장과 권력의 속성
  • 경남일보
  • 승인 2013.04.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동물농장’은 영국 작가인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농장 안의 최고참인 메이저 영감(돼지)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기 위해 반란을 선동하는 연설로 시작된다. 농장주인인 존스(인간)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 동물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켜 주인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동물들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지만 그것도 잠시, 동물들 사이의 권력다툼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최후의 승자가 된 나폴레옹(돼지)은 농장의 규칙을 교묘하게 바꾸어 각종 특권을 누린다. 돼지들은 지배집단이 되어 반대자를 처형하고 다른 동물들을 노예로 전락시킨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를 한번 보고 인간을 바라보았고, 다시 인간을 한번 보고 돼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당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독재정권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렸지만, 권력 앞에 선 인간의 모습과 동물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정치현실과 결코 무관한 것 같지 않다. 돼지와 인간을 비교한 작가의 상상력도 기발하지만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점이 많다는 점은 놀라운 뿐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속성은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까. 아마 첫 번째는 표를 얻기 위해서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공약을 내놓고 당선된 후에는 갑자기 귀 막고 눈 먼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주장이나 자기 생각, 자기 욕구에만 사로잡혀 안하무인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권력을 누가 잡든 내 삶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달콤한 말에도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존경보다는 경멸을 받는 사람이 많다.

약 500년 전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경멸받는 것은 변덕이 심하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경우다‘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인을 경멸하는 것은 불통과 독선, 사리사욕이 가장 큰 이유다. 국민에 대한,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경멸받는 이유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경멸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다. 경멸은 깔보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권력자가 국민들로부터 경멸당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난은 받아도 경멸만큼은 받아서는 안 된다.

때마침 지난주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사람, 지난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 선거 때마다 양보만 했던 사람이 모두 나섰고, 이들의 지명도 때문에 관심이 컸다. 결과는 싱겁게 끝났지만 향후 이들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주된 관심은 김무성의 역할, 이완구의 맹주, 안철수의 새 정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새누리당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하든, 충청권 맹주역할을 누가 맡든, 새 정치를 어떻게 실천하든 관심 밖이다. 국민들이 정치를 경멸하는 한 그들 또한 불통과 독선이 가득한 동물농장에 들어간 것뿐이다.

배려는 존경을 키우고 경멸을 상쇄한다. 우리 인간은 권력이 강할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오로지 목표와 관련된 정보에만 집중을 기울인다고 한다. 효율적인 의결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능력이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넓게 보는 마음, 국민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게 된다. 힘의 집중이 권력자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닫게 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권력자가 국민들로부터 경멸 대신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금 내가 속한 조직, 내가 속한 지역, 더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넓은 시각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