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잘 부린 ‘人災’가 출세하는 세상
꼼수 잘 부린 ‘人災’가 출세하는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1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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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지도자의 책임은 엄중·막중하고, 만인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새정부의 ‘지각 내각’의 청문회에서 들춰진 지도층의 문제를 접하면서 심각한 인물난의 시대를 절감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불거지는 비리 의혹을 보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나랏일을 책임질 인사 거의가 비리의혹에 휩싸였고, 내용도 한결같이 유사했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세·탈루, 부동산투기 등 청문회 비리 4관왕과 더불어 이권개입, 전관예우, 표절 등 헌법적 의무와 일상생활에서 탈법적 행태와 관련된 것이다. 준법생활은 고사하고 도덕성마저 결여됐음을 의미한다. 제기된 각종 의혹은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청문회에 임한 태도도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들들 볶느냐’는 식이었다.

필수덕목인 先憂後樂 모르는 공직자

지도층의 길은 단순히 학업 성적이 좋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한탕주의, 기회주의, 재산 불리기 등과 거리를 멀리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한 노력·훈련·관리와 준비가 필요하다. 일탈 행위가 도를 넘고 있는 실정이어서 심히 걱정된다.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을 해소하지 않는 한 사회 통합과 국력 결집은 요원할 것이다. 모범이 돼야 할 공직자들이 성공을 위해서라면 상식을 아랑곳하지 않고 편법을 일삼는 풍토는 나라를 좀먹는다. 만연한 사회 병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전 국민적 도덕 재무장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청문회가 지나친 신상털기나 사생활 침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청문회가 무서워 능력 있는 사람이 공직후보자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공직후보자의 탈법과 비도덕적 행위를 무마시키려는 편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돈·권력이 삶의 지상가치와 목표가 된지 오래 됐다. 혈연, 지연, 학연 등 너절한 패거리 문화가 만연한 풍토속에서 숨어있는 ‘옥(玉)돌’이 있다한들 얼마나 되겠는가. 부조리 현상이 권력형 부패를 넘어 총체적 부패현상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 중에는 부끄럽게도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군부 독재 시절에는 권력에 아부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1987년에 발표된 전두환 대통령의 56세 생일 축시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는 한심하다.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는 아예 생각에도 없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는데 지도층은 대오 각성해야 한다. 부패 부조리는 지도층 현상만은 아니다. 각종 부조리도 극에 달하고 있다고 보는 인사도 있다.

지도자나 공직자들의 필수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지사(志士)의 마음씨를 일컫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고사를 모르는 것 같다. 지도자는 항상 청렴해야하고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물러날 때는 자신의 업적을 돌아보고, 혹시 부지중이라도 자신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절대 경망스러운 행동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전지전능하지 못하듯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역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초반 행보는 다분히 그런 모습이 보였다. 부패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 있고,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감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액의 수입이 보장되는 높은 자리는 서로 끼리끼리 나누어 갖는다. 도덕적 해이가 어쩌다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것인지 진단해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어지간한 잘못은 눈감아 주는 관행이라도 생겼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萬機親覽’ 역시 가능한 한 일 아니다

공직자가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공인으로서의 자질을 몸에 익히는 훈련을 쌓은 사람만이 나서야 한다. 일상에서는 용인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한 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격함이 지도자의 덕목이고 책무이기도 하다.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는 ‘묘수(妙手)’ 보다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치졸한 짓인 ‘꼼수’가 판치고 있다. 지도층의 끊임없는 탐욕은 결과적으로 서민에 대한 약탈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취한 이득은 모두 서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인재(人才)보다 꼼수 잘 부린 인재(人災)가 출세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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