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詩의 감성으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머문다
오월은 詩의 감성으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머문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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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 (시조시인)
오월이 왔다. 신록의 계절 오월이 철쭉꽃을 입에 물고 그렇게 우리들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아카시아 단내를 허공에 날리며 시인의 가슴속에 파고들 때, 제비나비 한 마리로 따뜻하게 왔다.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줄장미는 푸른 가시를 세우고 뉘 집 담장을 넘어 시에게 붉은 연서를 보낸다. 연인 같은 시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꾸만 시선을 피해 어디론가 가고 있다. 동구 밖 저만치 떠난 시를 다시 데려다 곁에 앉혀 놓으면 또 다시 빠른 걸음으로 동구 밖을 빠져 나간다. 마치 엄마가 어린아이를 보듬어 품에 금방 데려다 놓고 잠시 시선을 때면, 어느새 또 나가버리는 것처럼 시가 자꾸 내 품에서 떠나려만 한다. 시도 세상구경을 다 하고 싶은 것일까? 엄마 품을 떠난 어린아이가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와 깔깔거리며 웃음을 보이듯, 내 품을 벗어나려는 시가 언제쯤 다시 내게 달려들어 포옹하며 웃어 줄 것인가. 이렇게 오랜 기다림은 진한 그리움을 낳는다. 애지중지하는 자식 같아서….

부모가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자식이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고, 스승이 제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제자가 스승을 존경으로 대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 깊은 정을 나누고 배운다. 정을 나누며 배우는 것은 오월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월만 되면 가족의 달이라 명명하여 야단법석을 떤다. 하지만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마저 없다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기념일마저 점점 인스턴트식(현금)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작은 것이라도 직접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고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담는 그런 기념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 사람의 취향을 어떻게 알아, 그냥 현금으로 주는 게 낫지”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우리 사회는 급속도록 변해 간다. 그나마 이런 기념일라도 있어 다행이다. 이런 기념일이라도 없다면 세상은 더욱 삭막하지 않을까 싶다.

푸름이 팽창하여 우주가 꿈틀거릴 때 온갖 꽃들이 더 뜨겁게 노래하며 나비와 벌을 불러 모은다. 꽃과 풀, 나무 등 모든 식물이 혈기왕성 할 때, 사람의 감성지수도 왕성해서 에너지가 넘친다. 이 왕성한 에너지를 물 쓰듯이 무작정 쓸 것이 아니라, 가끔은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나눠 쓰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무심코 그냥 지나치는 가운데 그늘을 드리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도 보내며 오월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공유하자. 시인은 시를 쓰면서 그리움을 낳고, 연인은 사랑하면서 그리움을 낳고, 아이는 커가면서 그리움을 낳고, 노인은 시간을 추스르며 그리움을 낳는…. 이렇게 오월은 시의 감성으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우리 곁에 푸르게 머문다.
임성구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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