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성 돋보이는 장편 한글 제문 발견
문학성 돋보이는 장편 한글 제문 발견
  • 곽동민
  • 승인 201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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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문천각’ 소장된 청주한씨 문중 기탁 자료
지극한 효심이 드러나 감동을 주는데다 문학성도 뛰어나 가히 ‘한글 제문의 백미’라고 할 만한 제문이 발견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국립경상대학교 도서관(관장 김명순 불어불문학과 교수)은 7일 2010년 청주한씨 병사공파 문중에서 고문헌 도서관인 ‘문천각’에 영구위탁한 자료에서 한글 제문 2점을 비롯해 한글 편지 4점, 혼수의 물목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경남 서부지역 사람들의 삶과 언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한글 자료로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상대 도서관은 그동안 이 한글 제문과 편지를 지은 주인공과 작성 연대까지 정확하게 밝혀냄으로써 지역의 문화와 역사, 일반인들의 생활사, 지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경상대 도서관은 지난해 6월 청주한씨 병사공파 문중에서 영구위탁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한글 고문서 몇 점을 발견했다. 이에 한문학과 이상필 교수, 국어국문학과 박용식 교수, 문천각 이정희 사서가 이 자료와 관련된 문중 후손들을 탐문 조사하고 관련 기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 이 제문을 지은 주인공은 산청 묵곡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으로 밝혀졌다. 이필헌은 산청 묵곡에서 혜산 이상규와 김해허씨의 딸로 태어나, 15살인 1915년 묵곡에서 합천 가회로 12살 신랑 한경우에게 시집을 갔다.

제문 2점 중 첫째 제문은 이필헌이 시집간 이듬해에 어머니 김해허씨가 별세하자 첫 기일에 쓴 제문이고, 나머지 1점은 22살 때인 1924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쓴 것이다. 이는 현전하는 한글 제문 가운데 비교적 오래된 자료에 속한다.

제문을 쓴 한지의 길이는 각각 3.8m이고, 글자 수도 각각 2822자와 2963자에 달하는 장편이다.

박용식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러한 장편 한글 제문은 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속에는 부모를 기리는 딸의 정성이 지극하고도 감동적으로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친정 어머니인 김해허씨에 대한 제문은 현재로는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해당하는 17세의 젊은 여인이 썼는데, 독서량이 상당했다는 점과 유교 경전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제문의 통해 어머니의 삶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문학적으로 기술했다.

박용식 교수는 “한글로 된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았던 선비의 여식이 한글 편지와 제문을 남겼다는 점에서 당시 산청에 살았던 선비의 가정교육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며 의미를 설명한다.

한글 제문은 그동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경북 지역 사람들이 지은 것이 발견되어 학계에 소개되기는 했으나 대부분 단편이었다. 경남지역에서 경남서부지역 언어로 작성된 장편 한글 제문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박 교수는 “100년 전 지역민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혜산 이상규와 그의 딸 이필헌과 관련된 한글 고문서는 그 분의 삶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100년 전에 우리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언어와 문자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매우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20130507-친정아버지 제문1
어버이날을 앞둔 7일 청주한씨 병사공파 문중에서 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인 ‘문천각’에 영구위탁한 자료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씌여진 한글제문이 발견돼 화제다. 사진은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1901-?)이 친정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한글 제문. 사진제공=국립경상대학교
20130507-친정어머니 제문1
어버이날을 앞둔 7일 청주한씨 병사공파 문중에서 경상대학교 고문헌 도서관인 ‘문천각’에 영구위탁한 자료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씌여진 한글제문이 발견돼 화제다. 사진은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1901-?)이 친정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한글 제문. 사진제공=국립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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