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CEO들이 인문학에 빠진 이유는
기업 CEO들이 인문학에 빠진 이유는
  • 연합뉴스
  • 승인 201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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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적 통찰에서 선견지명 싹튼다”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앙드레 코스툴라니, 벤저민 그레이엄, 존 템플턴, 마크 파버 등등.

미국 월가를 쥐락펴락하는 대표적인 투자자들인 이들은 예상과는 달리 철학 등의 인문학에 심취하거나 전공을 한 사람들이다. 소로스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세계적인 철학자 칼 포퍼의 제자였다.

이들 외에도 경제를 배우지 않은 투자 고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로 월가엔 투자성과와 경제지식은 서로 무관하다는 걸 입증한 투자 고수가 수두룩하다. 되레 철학·역사·문학 등 인문학 지식·정보가 투자활동에 더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이다.

‘창조 인문학’ 전도사로 통하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신간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인문학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는 “문(文)이란 원래 무늬란 뜻이다. 따라서 인문(人文)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인간의 결’ 또는 ‘인간의 동선’이라 부를 수도 있다. 곧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와 인간의 동선을 알기 위함이다”고 설명한다.

과거는 ‘인간의 동선’ 뒤쪽이고 미래는 앞쪽일 뿐이다. 그러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이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을 가늠하지 않고도 가능할까?

최 교수는 “인문학은 고매한 이론이나 고급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고 지적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그룹이 인문학 연구에 매진하는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성공할 수 있음을 기업인들이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다.

“상인들은 매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지요. 상인들에게는 다른 직업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속적인 긴장감이 있어요. 이처럼 항상 ‘생과 사’의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에 상인들에게는 예민함이 살아 있습니다. (중략) 생과 사와 같은 경계에 서서 민감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갖추어진 고도의 감각, 저는 이것을 ‘더듬이’라고 부릅니다. (중략) 기업은 인문학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에요. 새로운 인류에 맞추어 가는 데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으로 ‘딱!’하고 알아챘다는 것입니다.”(37∼38쪽)

그렇다면 인문적 통찰은 어떤 것인가? 최 교수는 정치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사태나 사건을 만났을 때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우리는 그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일 뿐이다. 인문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길들어 있다는 얘기다. 인문적 통찰은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고 강조한다.

이 세계가 움직이면서 그려내는 도도한 흐름과 방향, 그 큰 흐름을 비밀스럽게 보여주는 작은 일이나 현상들을 ‘조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조짐으로 읽힐 만한 어떤 현상을 보고 단지 ‘좋다’거나 ‘나쁘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은 문명의 큰 흐름을 알 가능성을 단절시켜 버린다고 최 교수는 지적한다.

따라서 최 교수는 대답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라고 강조한다.

“5년, 10년 전만 해도 저런 일이 불가능했는데 이 세계에 무슨 변화가 있기에 저런 일들이 가능해졌지? 바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인문적 통찰은 대답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데서 비로소 열립니다. 질문하는 활동에서 인문적 통찰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선견지명의 빛은 자신에게 이미 있는 관념을 적용하는 데서 나오지 않고, 질문을 하는 곳에서 피어오릅니다.”(46∼47쪽)

그래서인지 이 책은 마치 훈련을 시키듯 책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멘토를 죽여라’, ‘나를 장례 지내라’,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등 통념에서 벗어난 주장도 거침없이 펼친다.

최 교수는 보편적인 기준이나 합리적 계산 혹은 객관적 표준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이 아니라 욕망의 힘이 주도권을 가진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재하라고 요구하고 설득한다. 그는 묻는다.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소나무. 296쪽. 1만5천원.

연합뉴스

인간이 그리는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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