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남강유등축제’의 성과와 위기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성과와 위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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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기 (국립경상대학교 총장)
중·고등학교 다니던 1970년대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개천예술제를 기다렸다. 개천예술제 때 남강 둔치에 설치하거나 강물에 띄우는 등(燈)들의 축제 ‘유등대회’는 가장행렬과 함께 굉장한 볼거리였으며 우리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를 비롯한 모든 고등학생은 자기가 직접 만든 등을 띄우며 소망을 빌었고, 진주에 소재하는 고등학교는 호랑이·용·거북선·우리나라 지도 같은 등을 만들어 둔치에 설치하곤 했다. 40년도 더 된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유등대회를 모태로 하여 오늘날 ‘진주남강유등축제’가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진주남강유등축제는 2000년에 개천예술제에서 분리 개최된 이후 2002년 지역특성화 축제, 2003년 문화관광부 예비축제 등을 거쳐 2006-2010년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지정되었고, 특히 2011년에는 세계축제협회(IFEA) 피너클 어워드에서 금상 3개와 동상 1개를 수상했다. 이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지난 2월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열린 ‘윈터루드’(winterlude) 축제에 우리나라 축제 사상 최초로 수출된 데 이어 오는 9월 26일부터 4일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LA한인축제에도 진출하게 됐다. 문화예술 콘텐츠는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파급력이 엄청나다. 하지만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성과를 자축하고 있기엔 현실이 엄혹하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지자체가 남강유등축제를 순 우리말로 하면 ‘베낀’, 학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표절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에 개최하더니 이를 연례화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방침이라고 한다. 진주시 쪽에서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창희 시장은 3월 27일 열린 ‘서울등축제 대응 비상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일본이 독도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함평나비축제는 전국에 굉장한 이름을 날렸지만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진주남강유등축제에 설치한 공북문을 베낀 서울등축제의 숭례문 등을 비롯해 용등·소망등 터널·널뛰기 등 뽀로로와 친구들의 만화캐릭터 등은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유형적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상경집회를 하고 법적 대응을 하는 등 행정적·시간적·경제적 낭비를 하기 전에 서울시에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역사적 배경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적인 신호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인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민관군이 하나 된 애국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물, 불, 빛’의 축제로 승화된 것이다. 민관군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던 애국정신, 가족사랑의 정신은 오늘날 소망등 달기와 창작등 달기에 전체 시민의 50% 이상이 스스로 참여하는 참여정신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無湖南 無國家(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의 정신으로 진주성을 지키고 나라를 살린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자긍심은 진주남강유등에 실려 캐나다·미국 등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성공하는 문화상품에는 이처럼 역사와 이야기, 소위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 지역의 정신이 담겨 있는 법이다. 겉껍데기만 옮겨 놓는다고 하여 문화예술에 담긴 ‘혼’과 ‘얼’마저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신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는” 문화의 힘은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문화의 힘은 오랜 전통과 독창적인 창조성,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절차 등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가 단순한 오락이나 여흥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나라 사랑의 얼이 담긴 문화상품으로 세계로 진출하게 되는 힘도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국 방문의 해에 진주남강유등축제라는 훌륭한 문화콘텐츠를 흉내내어 일시적으로 등축제를 할 수 있었던 지자체는 그것으로만 만족하든지, 아니면 정중히 진주시의 양해를 구한 뒤에 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관련 지자체장의 문화 창조에 대한 양심과 결단을 기대한다.

권순기 (국립경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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