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도자기를 빚듯 詩를 정형하다
명품 도자기를 빚듯 詩를 정형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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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 (시조시인)
시를 쓴다는 것, 특히 정형시를 쓴다는 것, 도자기를 빚는 장인의 정신과 같다.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한 편의 정형시가 탄생하기까지는 무수한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 마치 도공이 명품도자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 천도 불가마의 불길 속에 제 영혼의 뼈를 태워서 명품도자기를 탄생시키듯이 여백의 행간을 영혼의 뼈로 심어야만 깊어서 더욱 웅장한 소리를 낸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청잣빛 음률이 흐르는 ‘우리의 멋’인 ‘시조’가 탄생한다.

지인으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왜 하필이면 시조를 쓰냐?’이다. 보다 자유로움 속에 마음껏 늘였다 줄였다 하며 편하게 쓸 일이지, 꼭 초장, 중장, 종장을 구분하여 ‘3장 6구’라는 ‘시조’의 틀에 맞춰 어렵게 또는 고리타분하게 쓰냐고 말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대답하기를 ‘시조’는 결코 어렵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시조를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내가 시조를 쓰는 까닭은 내 시에 푹 고은 진한 사골국물 맛을 내기 위함이요, 도공이 흙을 빚어 문양을 새기고 구워내는 장인정신을 본받기 위함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형의 틀 안에 말을 응축시키고, 모서리를 쳐내서 둥글고 오묘한 ‘가락’을 얹은 깊은 음률을 얻는다는 것은, 대숲이 휘어지면서 신내림을 받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센 바람에도 대는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시조를 이해하고 즐긴다는 것은, 우리의 멋을 즐긴다는 것이다. 시조는 모나지 않는 부드러움의 미학, 응축된 소리(가락)의 미학, 율동(춤)의 미학, 안식(진한 감동으로 마음을 정제시켜 평안을 찾아주는)의 미학이다. 할 말만 간추려 말하므로 산만하지도 않고, 곡선을 이루기 때문에 소리가 안으로 모아져 감동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 ‘시조’이다. 하지만 시조의 형식만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감동적이지는 않다. 어설픈 작품은 현(絃)이 잘린 악기나 기형이 된 도자기와 같다. 행간을 잘 갈고 다듬어야만 명품으로 탄생하여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 할 수 있다. ‘시’는, ‘시조’는, 쉽게 마음이 닿지 않지만, 한 번 닿은 마음은 오래 머물러 독자를 서성이게 한다.

시인이여! 시조시인이여! 독자가 오래 머물러 서성일 수 있도록, 우리의 멋을 살려 명품 도자기를 빚듯 시를 정형하자. 검인정 교과서에도 우리의 얼이 숨 쉬고, 우리의 멋이 살아 있는, 시조 명품이 가득 넘쳐나길 빌면서 우리 스스로를 더욱 담금질을 하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의 정형시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많은 관심과 함께 젊음을 수혈해야 한다. 시조는 대나무처럼 낭창낭창 휘어지면서 음률의 지팡이를 짚고 다시 일어서는 끈기와 힘의 결정체이다. 우리 모두 다양한 각도에서 보다 젊게, 푸르게 시를 정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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