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온과 안티고네
크레온과 안티고네
  • 경남일보
  • 승인 201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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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크레온과 안티고네라고 하는 신화의 주인공들의 사례를 보면서 오늘의 우리 리더십을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 왕의 처남이요,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주인공이니 당연히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외삼촌이긴 하지만 오이디푸스에게도 외삼촌이 되는 사람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긴 하지만 동생도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 가족과 같은 관계라는 얘기다.

크레온은 대단히 원칙주의자이고 소신이 넘치는 사람으로 국가를 굳건히 하려는 열정에 넘치는 지도자다. 이에 반해서 안티고네는 여성답게 인정 많고 효성과 우애심이 지극한 여인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알아차린 순간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나서 왕위를 버리고 테베왕국을 떠나 유랑의 길에 나선다. 효심이 강한 안티고네는 눈먼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함께 유랑생활을 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러나 얼마 안가 아버지가 돌아가자 안티고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향은 그가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다. 오빠 둘이 왕권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1년마다 번갈아 가면서 왕권을 맡기로 한 약속을 형이 어기자 동생은 외국으로 가서 군대를 끌고 와 형에 도전한 것이다. 오랫동안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두 형제가 1 대 1로 맞붙어 결판내기로 했다. 죽기 살기로 싸운 결과는 형제 모두가 죽는 길밖에 없었다. 한때 테베왕국의 왕위에 있어본 경험이 있는 크레온이 다시 왕위에 올라 사태수습을 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원칙에 충실한 크레온은 왕위에 있었던 형의 시체는 정중하게 매장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외국으로 도망을 가 군사를 이끌고 침략해온 동생의 시체에 대해서는 매장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처한다는 무시무시한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인정 많고 우애심이 많은 안티고네는 들판에 버려져 있는 둘째오빠의 시체를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나 죽은 사람의 안식인 장례행사도 못하도록 한 처사에 대해 분개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시체를 매장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매장 순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들이면서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달려와 아버지인 왕 크레온에게 매달리면서 용서해 주기를 하소연한다. 그러나 원칙주의자인 크레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서 국법을 고의로 어겼다는 이유로 안티고네를 생매장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잠시 후 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예언에 따라 크레온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안티고네를 풀어주고 오빠의 매장과 장례식을 치러 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안티고네도 하이몬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던 것이다.

이처럼 불가피한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지도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주어진 딜레마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현명한가 하는 것이 곧 리더십이다. “안티고네에 대한 가혹한 처사 때문에 역사는 크레온을 전제군주나 독재자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동양의 법가적 입장이나 국가론적 견지에서 보면 크레온의 경우는 온전히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선택을 사람들은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느냐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덕목은 ‘고집스럽게 타협을 거부하면서 자기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통해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채수환). 이런 사정을 보면 어떤 이가 말한 것처럼 ‘한 지도자의 가장 훌륭한 장점은 그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고금의 진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도자의 덕목 중에서 스스로가 정한 ‘원칙의 고수(固守)’는 때로는 소아병적 하수(下手)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히려 언제든지 타협할 수 있는 귀와 입과 생각을 열어 놓고 있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라 할 것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사건을 보면서 대통령의 인사에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가를 가늠케 하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의 평판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리더십 말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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