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거룩한 음성
<이준의 역학이야기> 거룩한 음성
  • 경남일보
  • 승인 201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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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土聲)의 이중성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정확한 출생일을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이들이 이렇게 믿고 즐거워하고 있으니 필자역시 경축하는 바이다. 마치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날을 온 교회에서 경축하니 그저 그렇게 세속의 흐름에 따라 어울려 축하할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들의 삶은 평범한 세속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참으로 기구한 팔자들이다. 애써 좋은 왕궁의 자리를 박차고 나서 해탈의 고행을 스스로 자초하지 않나, 그저 세속의 흐름에 따라 살면 될 것을 애써 하늘나라를 추구한다며 십자가에서 절명하지 않나, 그저 이 사람 저사람 비위를 맞추며 몇 푼 돈푼이나 챙기면서 살아가면 될 것을 무어 잘 났다고 시장으로 돌아다니며 집에는 생활비 한 푼 벌어 주지 않고 젊은 친구들과 더불어 맨날 술만 퍼마시며 끊임없는 이야기로 평생을 보내지 않나, 그저 악기로 노래나 부르며 서당선생이나 하면서 적게 먹고 가는 똥 싸다가 가면 될 것을 성인의 이상세계를 구현한답시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일생을 노심초사로 보내지 않나, 어떻든 이 분들의 평생은 독특하고, 삶의 궤적 역시 속인들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무게들이다. 하지만 2천년도 넘은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세상 사람들은 이 분들의 삶을 기리고, 이야기하고, 추앙하고, 본받고, 이 분들의 눈으로 현세의 일들조차 살피려 든다. 물론 이 분들보다 더 훌륭한 분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탁월한 제자들의 애정 어린 기록과 신념 덕택에 이 분들은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이 분들은 윤리와 도덕, 지혜와 사랑, 초극의 화신으로서 인류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성인(聖人)보다 악당(惡黨)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더 재미있어 한다. 교활하고 끈질기고 잔혹한 악당일수록 시청률은 더 올라간다. 선량한 주인공이 그 악랄한 악당에게 온갖 신고(辛苦)를 겪지만 끝끝내 착한 마음과 행동을 잃지 않고 기어코 악당을 물리쳐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해피엔딩으로 끝날 때 사람들은 속이 뻥 뚫린 것 같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고전적 이야기의 플롯이지만 그래도 그 강력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빨아들이기에 지금도 작가들은 즐겨 쓴다.

나아가 사람들은 이런 플롯을 이야기에 국한시키지 않고 세상의 일들에 투사(投射)시키면서 어떤 희열을 느끼고, 그리하여 스스로의 애타는 처지를 잠시 잊으려 한다. 이른바 부당한 갑(甲)들의 횡포에 신랄한 질책을 가함으로써 스스로는 선량한 주인공이라는 환상에 잠시 젖는다. 또한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런 자신의 생각과 존재감에 확신도 갖는다. 동시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는 자신을 구원하여 축복해 줄 초월적 힘도 앙망한다. 바로 부처님이고 예수님이다. 현실적으로는 국가 조직이고 대기업이다. 사람들은 국가 조직과 대기업이 부처님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살피고 도와주고 어루만져 주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국가 조직은 천사의 나라를 지향하면서 악당의 행태를 보이고 있고, 대기업은 천사의 얼굴로 미소 지으나 실제로는 악당이다. 이런 이율배반적 속성을 발견할 때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하지? 로마 신화에서는 이런 이중적 모습을 농경과 계절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로 그리고 있다. 사람의 삶이란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명쾌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것이 뭉쳐져 그저 그렇게 뭉뚱그려 넘어 가는 것을 말해준다. 그저 때와 계절과 세월에 따라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번갈아 바꾸어 나타날 따름이다. 하여 영원한 천사도 영원한 악당도 없다.

대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말을 하는 사람들은 중저음의 거룩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른바 토성(土聲)의 목소리다. 그리고 사람들은 목화금수의 목소리에는 가볍게 반응하는데 비하여, 토성의 울리는 목소리에는 신중하고 깊이 있게 반응한다. 목을 길게 빼어 발음하면 높은 소리가 나지만 목을 끌어당기면 중저음의 울리는 소리가 난다. 사람들은 그런 목소리에 흠뻑 젖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술축미(辰戌丑未), 무기(戊己)의 이런 목소리는 믿음과 동시에 음흉함도 내포하고 있으니,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잘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처럼 중저음의 갈라진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가다듬는데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거룩한 목소리에 속지 말자. 그 어떤 사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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