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에게 말을 걸다
초록에게 말을 걸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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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 (시조시인)
나는 가끔, 소음과 매연으로 찌들어버린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바쁜 일상에서 누적된 피로에 내 몸과 마음이 먼저 휴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선한 공기로 ‘스트레스’라는 일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 굳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담고 싶은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절실히 느껴질 때 나는 가끔 숲으로 가 초록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무심코 사용하는 폭력적인 언어들, 날카로운 신경세포가 키운 육체적인 폭력, 여러 영상매체가 키운 무기력이 우리 사회를 점점 시들게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기계와 대화하는 게 익숙해져버렸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우리의 대화 상대는 늘 호주머니 안에 있다. 각자 휴대폰을 꺼내 게임이나 문자, 카톡을 통해 대화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따뜻한 눈빛과 체온과 감성으로 하는 대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숲에 와서야 깨닫는다.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이렇게 눈부신 적이 있었던가, 바람에 흔들리는 잎잎들에 이렇게 싱그러운 향기가 있었는데, 나는 언제부터 이 향기와 느낌을 잃어버리고 산 것일까? 꽃들이 또 저렇게 흐드러지게 피어 순수한 마음으로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는 것은 물론, 내 마음까지 불러 앉히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를 외면하고 있었구나. 나무는 나의 외면에도 아랑곳없이 푸른 고요를 먹고 키를 쑥쑥 키워 아름드리가 되었구나. 오늘 숲에 와서 너를 안아 말을 걸자니 눈물이 난다. 너는 또 푸른 가지로 내 심장을 쓰다듬고 내 등을 토닥여 주는구나.

그래도 잠시나마 초록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이다. 투명한 마음이 투명한 문장을 남기고, 또 그 문장이 여러 사람에게 초록빛깔 감동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기계와 사람 간의 거리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좁히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 자연에게서 배운다.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 갖고 생활 하는 게 아닌데 우리는 모두 똑 같기를 바란다. 사람은 가공된 생산품이 아닌데 사회는 가공시키고 있다. 한창 감성이 예민하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엔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영수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보다 우리 역사와 문화 우리 땅에서 얻어지는 자연환경과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와 예절과 같이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

내가 최고가 되기 위해선 친구를 짓밟아야 하고,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짓밟아야만 최고가 되는 그런 경쟁사회가 지속되어선 안 된다. 아름다운 사회는 서로 끌어 주고 밀어주며 같이 가는 것이지, 서로를 밟고 가는 것이 아니다. 눈만 뜨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는 지금 미친 듯이 경쟁하고 있다. 자연은 비가 오면 젖고, 바람이 불면 서로 부대끼면서 함께 어우러져 무성한 숲을 만든다. 사람도 몸과 마음이 서로 부대끼면서 함께 어우러져야만 맑고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오늘 초록을 보며 ‘아름다운 동행’을 가슴에 새긴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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