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없는 문화거리
문화 없는 문화거리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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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진주에는 ‘남가람 문화거리’라는 이름의 문화거리가 있다. 남가람 문화거리는 공간적으로 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천수교에서 남강교까지의 강변 산책로 인근 구간을 일컫는다. 남강문화거리는 새천년 사업 당시 문화거리사업으로 조성되었으니 십여년 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진주사람 중에 문화거리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지금의 ‘남가람 문화거리’를 문화거리라 부르지 않고 ‘강변산책로’라고 부른다.



왜 문화거리가 없다고 여길까

왜 진주사람조차 문화거리가 있는지 모를까. 진주 문화거리가 진주사람들에게 여전히 강변산책로인 까닭은 ‘문화 없는 거리’여서다. 촉석루를 건너 바라보는 대숲으로 이어진 강변산책로는 너무나 아름답다. 진주사람들은 이러한 아름다운 진주성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강변산책을 즐긴다. 진주성과 어우러진 남강변의 풍광은 보석처럼 빼어나다. 하지만 아무리 풍광이 뛰어난 명소라 해도 문화 없는 거리는 산책로일 따름이다. 몇몇 잊혀져서 안될 시인들을 기리는 시비나 조형물들이 거리를 장식한다 한들 문화거리일수는 없다.

남강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이 문화거리이기 위해서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원래 ‘거리’는 확장된 거주지나 생활공간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테면 ‘장터거리’는 집에서 정성들여 만들어내 놓은 물건이 넘치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의 흥정이 생기를 더하는 거리를 지칭한다. 마찬가지로 진주의 문화거리는 이곳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그들의 생활문화를 확장시켜 나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런 생활을 확장시킨 공간은 진주사람들이 소통하는 광장이다.

문화거리를 문화예술거리로 만들자면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인 그들의 집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거리의 집들은 그들의 공방이나 창작공간인 일터이면서 다양한 창조행위의 진솔한 모습들이 풍경으로 되살아나는 곳이다. 이따금 그들의 생기 있는 창작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전시되기도 하고 공연되기도 해야 한다. 그들의 집적된 문화생산물들을 전시하고 공연하는 것이 예술축제가 아닌가.

문화거리의 공연이나 전시가 활발하려면 일이 놀이로 겹치는 장소여야 한다. 예술창작의 놀이가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여야 한다는 뜻이다. 오직 일과 놀이에 몰두할 수 있어야 일상의 삶은 지속된다. 그러한 일과 놀이가 함께하기 위해 그들이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문화적 생산물을 전시하고 공연할 확장된 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예술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생계수단으로서 예술 창작활동을 지속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더욱이 문화적 변방인 진주는 예술인들이 그들의 문화적인 생산물의 가치를 온전하게 평가받기가 어려운 곳이 아닌가.

문화도시 진주에는 진정한 문화거리가 필요하다. 진정한 문화도시가 되려면 문화예술인들이 문화거리로 나와야 한다. 문화거리로 예술인들이 나온다는 의미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거리의 생산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문화거리는 그들이 문화거리에 집을 들이고 공방도 만들고 전시를 하고, 이를 소비하는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곳은 문화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거리공연이나 전시물을 구경하면서 함께 즐기기도 하고, 색다른 분위기에 젖어 물건을 구경하다가 추억거리로서 물건을 구입해 가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진주시는 이제 고색창연한 역사도시라 말로만 선전할 게 아니라 진주성의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진주시가 문화거리 조성을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은 문화예술인들의 공방, 전시 그리고 생산활동을 위한 거점이 되는 지역을 문화구역으로 설정하는 일이다. 물론 문화거리에 입주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세금혜택, 입주보증금 재정지원, 문화거리 활성화 프로그램지원과 같은 시책과 이를 도시계획 정비에 반영하는 수순이 따라야 한다.



진정한 문화예술거리를 위해

진정한 문화거리는 그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진주는 어느 도시보다 많은 예술인들이 이미 살아가는 명백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말로만 문화예술도시라 칭하면서 언제까지나 옛날 예술제의 찬란했던 영광을 한탄만 할 것인가. 더욱이 궁색하게 남강변 산책로를 ‘남가람 문화거리’로 부르는 것은 문화도시 진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인가.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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