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많고 배울 건 더 많다"
"할 일은 많고 배울 건 더 많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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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희 (밀양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5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맘때면 국어책을 통해 만난 2명의 수필가를 떠올린다. ‘인연’으로 유명한 피천득은 태어난 달도, 세상을 떠난 달도 5월이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오월’이란 수필을 남겼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중략)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또 한 사람 이양하의 ‘신록예찬’도 5월을 칭송한다.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중략)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분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5월은 예찬 받을 만하다. 이렇게 좋은 5월이 지방의원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로 다가온다.

각종 행사가 집중돼 있는 5월을 맞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움직이고 있다. 초·중·고 동창회에 경로잔치, 체육대회, 지역구 행사 등 하루에도 수십 개의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주민이 부르는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내년 6월 4일 열리는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일분 일초를 쪼개 행사에 참석, 지역민들에게 눈도장 찍기에도 여념이 없다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 살고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산다고 한다. 표를 갈구하고 다니는 배고픈 정치인들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인정을 중시하는 지역의 정서상 소홀히 할 수 없는 의원의 역할 중 한 부분이다.

지역주민들 처지에서야 지방의원이 항상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로 보이겠지만, 의원들이 진짜로 해야 할 일은 불합리한 조례와 제도를 변화시키는 정책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의회의 가장 큰 권한은 입법권이다. 그러나 실제 지방의회 현장에서는 예산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조례는 덜 중요하게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현행 지방자치법이 조례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제정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입법권을 제약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조례는 정부표준안에 기초하여 집행부에서 발의하며, 의회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약간의 질의·응답절차를 거쳐 수정 없이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보좌관 없이 그 많은 조례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심의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다.

집행부가 제출한 안건을 따지지 않고 통과시켜 주는 게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까지 있다. 여기에 넘어가면 일은 집행부가 하고, 의회는 감시·견제구실을 하는 아주 기계적인 역할론에 안주한다. 의회는 주민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어느새 집행부를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지방자치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집행부와 의회의 관계는 ‘따로 국밥’이 돼서도, 그렇다고 ‘한통속’이 돼서도 곤란하다. 고도의 절제와 긴장이 양자관계 가운데 상존해야 한다.

예산과 감사는 의회의 핵심기능이지만, 의정활동을 회의장에 국한시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구체적 수치와 오류를 찾아내는 데 치중하다 보면 자칫 정책배경과 같은 큰 그림을 놓친다. 이미 지방정부에서 집행하는 예산의 총계가 중앙정부 예산을 넘고 있고, 국비 보조사업 등이 많아 중앙정부의 정책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지자체 사업에 대안적 접근을 할 수 없다. 결국 예산과 관련 된 세입·세출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문제점과 대안을 찾고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일도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의원이 되기 전에는 의원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그러나 막상 접해 보니 도처에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할 일은 많고 배워야 할 건 너무 많다’는 게 3년이 지난 요즘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발에 땀 나도록 현장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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