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 한장, 마음 한가득 보내드립니다
편지지 한장, 마음 한가득 보내드립니다
  • 정원경
  • 승인 2013.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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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밀려나는 손 편지의 추억
“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는 아버지의 아들 김지훈 입니다.

제가 요즘 실수도 잦아지고 잘 못해서 속상하셨죠? 제가 앞으로는 더욱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아들 김지훈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요즘 회사일 때문에 힘드시죠? 그래도 담배는 조금만 피우세요. 건강에 해로워요.

그리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얼마전 어버이날을 맞아 많은 학교에서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도록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평소 쓰지 않던 편지글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 줄도 써내려가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고 봉투 쓰는 법도 몰라 허둥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의 편지 내용에는 이모티콘이 남발해 있고 문장을 끝 마치지 못해 말 줄임표로 답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쓴 편지에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김지훈군도 학교에서 내준 과제로 편지를 썼습니다. 매번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반복되는 말들이었지만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던 많이 사랑한다는 애정표현과 담배를 많이 피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는 지훈이의 편지. 아버지의 얼굴에는 자꾸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에 감동한 아버지는 지훈이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답장을 쓰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과제로 억지로 아버지에게 감사 편지를 썼던 지훈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아버지의 편지에 기쁨을 느껴 다시 아버지에게 감사의 글을 썼습니다. 지훈이 아버지는 아들이 쓴 두 번째 감사 글을 받아든 지훈이 아버지는 “아버지, 사랑해요!”라는 아들의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습니다. 종종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는 이들 부자는 편지를 통해 서로 잘 몰랐던 점을 하나씩 찾을 수 있었다며 다음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기다려 진다고 웃음 지었습니다.

큰 돈이나 대단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눈을 뜨고 일어나 활기찬 목소리로 가족들과 인사 나누기,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하면서 격려하고 감사하기, 출근하고 등교하면서 따뜻하게 배웅하고 포옹하기, 수시로 문자나 이메일, 전화나 쪽지로 내 마음을 전하고 대화 나누기 등. 그러나 그런 것들이 너무나 쉽고 단순하기 때문에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갖는 그 엄청난 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영리단체인 한국편지가족 부산지회 조윤주회장은 무엇보다도 편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소통’이라고 꼽았습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편지쓰기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고 평소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도 잘 표현하게 됩니다. 또한 편지는 표현력 뿐 아니라 문장력도 키울 수 있게 되고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를 배움으로써 학생들의 인성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평소에 회원들과 가족들 사이에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는 이정옥 씨는 때로는 한 마디 따뜻한 말이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감사합니다.’ 라는 한 마디의 말이나 한 줄의 글이 막힌 담을 헐고 서로를 보듬어 안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듯한 인간 관계가 단절되어가고 있고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으며 세상은 삭막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실적 위주의 사회에서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만 내달리고 아이들은 컴퓨터에 파묻혀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칭찬보다는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들이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따뜻한 사랑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미안함도 고마움도 감사함도 잊고 사는 우리들은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화를 나눌 틈이 없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서로 감사하는 편지를 나누고 서로 불신의 감정을 갖고 있던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척이나 친구에게 감사의 편지를 띄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2013년 5월 22일

정원경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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