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터
<이준의 역학이야기>터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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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마음
몇 달 전 매제(妹弟)가 집을 짓는다고 터를 봐 달라기에 몇 곳을 말해 준 적이 있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터를 고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집이 되어 가는 줄만 알았는데 뜬금없이 터를 다시 봐 달란다. 왜냐고 물었다. 매제의 조카가 유명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하는데 사업확장 때문에 선산을 살펴보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몇 분들을 각각 따로 모셔서 선산을 살펴보았단다. 나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관련 일을 하는 놈이 무슨 선산타령이냐 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우리 문화의 심리적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강의실에서 정보지식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사주팔자 풍수지리 역경 등에 흠뻑 매료되어 있으니 말이다.

보이는 자연 및 사회현상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무슨 음모 같은 것, 그 음모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은 호기심의 발로에서 수학의 원리, 과학적 법칙, 사회적 원리, 종교적 섭리 등이 발견 및 발전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비록 첨단 정보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역시 사업의 성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묘 자리를 살펴보려는 심사도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든 우리나라에서 아주 이름난 몇 분들을, 나로서는 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감명비를 드리고 모셔 와서, 선산을 보는 중에 삼촌 집 지을 터도 봐 달란다고 하였단다.

나는 물었다. “그래, 어떻다고 하느냐?” 매제가 답했다. “한사람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엄청 좋다고 하고, 한사람은 대주가 객사한다고 하고, 또 수맥을 보는 사람은 엘로드 막대기 수치를 들먹이며 4대가 망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말을 겁나게 해대는데 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안해서 집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형님보다 억수로 유명한 사람들로서 재벌 누구누구 선산을 봐주고, 정치인 누구누구 집터와 선산을 봐주고, 고위공직자 누구누구 집과 사무실 인테리어 디자인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나는 순간 속이 울컥하여 되물었다. 그런데 그 유명한 놈들의 말이 왜 같은 땅을 두고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좋다고 말하고, 또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나쁜 말을 하느냐 말이다. 그래 말입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묻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말했다. 네 마음 편한 대로 해라. 수맥이란 증명된 바도 없으며 물위에서 평생을 사는 수상족도 있다. 수맥이 의심스러우면 대한지질학회에 가서 과학적 방법으로 확인해라. 버드나무가지나 엘로드 막대기가 사람의 운명을 점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욕심과 불안 때문에 이리저리 순박하게 물으러 다니지만, 스스로 젠 체하며 이름을 알리는 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불안심리를 예리하게 간파하여 극단적인 말로써 사람들을 옭아맨다. 이들 말의 공통점은 최고의 극찬이 아니면 최악의 끔찍한 말이다. 중도(中道)가 없다. 그리고 결국은 기어코 비싼 돈을 들여 비보하도록 만든다. 또 다른 사기꾼일 따름이다.

한편으로 이름 없는 후배 하나가 생각났다. 부산 광안리에서 아주 이름난 역술원을 운영하였던 후배이다. 몇 년 전 내게 말했다. “형님, 광안리 역술원 접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왜?”, “이름이 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니 왈칵 겁이 나데예.” 그래, 잘 했다. 분에 넘치는 명예와 돈은 복이 아니라 스스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풍수는 음양론으로 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여기에서 장풍, 득수, 정혈, 좌향, 형국, 간룡법이 나온다. 여기에 낙서(洛書)의 구궁도를 들이밀면 나 자신도 나에게 속는다. 그러나 이런 술수보다 옛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즐겨 하였던 방식이 생각난다. 옛사람들은 집을 짓고 싶은 곳에 가서 며칠 밤을 천막을 치고 잠을 자본다. 스스로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면 다음에는 건강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데려가서 천막을 치고 잠을 자본다. 여러 아이들을 여러 번 데려가서 잠을 자는 모습을 살피고, 그 뒤의 행동을 보면서 활기차고 건강하게 뛰어 놀면 그 자리에 집을 앉힌다. 무슨 복잡한 방법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터는 양택이든 음택이든 땅과 산세가 순조롭게 흘러야 한다. 바람은 부드럽고 물은 보기 좋아야 한다. 흐르는 선이 예각(銳角)이면 조심하여야 하고, 특히 마주치는 동선이 30° 이내의 각이면 도로든 물이든 산맥이든 피하여야 한다. 풍광(風光·view)이 좋아도 늘상 광풍(狂風)이 휘몰아치면 피해야 한다. 매제에게 말하였다. “텐트 치고 며칠 자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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