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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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의 표본-철강 왕 카네기
1835년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앤드류 카네기는 14살 되던 해인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로 이주했다. 학업대신 방적공,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1853년에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그는 1865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와 유정사업 등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카네기를 재벌로 만든 것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강철이었다. 당시 철도교량들은 나무로 돼 있었는데 화재에 취약해 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였다. 1865년 철강 수요의 증가를 예견한 그는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독자적으로 철강업체를 설립하였다. 1872년 홈스테드제강소, 1892년에는 카네기 철강회사를 각각 설립했다. 그러고 나서는 기존의 철강 관련 사업체를 하나로 묶어 카네기 철강회사라는 트러스트를 결성한다. 이 회사는 한때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행사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01년에 카네기와 당대의 거물 은행가이자 당시 2위 철강 업체의 소유주였던 J. P. 모건 간에 유명한 ‘빅딜’이 이루어졌다. 카네기는 4억8000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했고, 이후 모건은 다른 철강 회사까지 포함하여 자본금 14억 달러로 미국 전체 조강생산량의 약 65%를 지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철강회사 유에스 스틸을 설립한다.

이후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온 카네기는 사업일선에서 은퇴하고 자신의 재산을 ‘나누기’ 시작했다. 1901년에 은퇴한 카네기는 1902년에 카네기 협회, 1905년에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1910년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1911년에 카네기재단 등과 같은 여러 분야의 자선사업을 관장할 기구를 조직해서 다양한 자선사업활동을 펼쳐나가게 된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50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1881년에 그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던펌린을 시작으로 2500여개에 달하는 도서관을 지어 사회에 헌납했다. 1900년에는 카네기 공과 대학을 설립하였고, 1891년에는 세계적인 공연장으로 유명한 카네기 홀이 개관되었다. 카네기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 3억5000만 달러(약 30억 달러) 거의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였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그중에서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1889년에 출간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은 당대에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쓴 “재산을 안고 지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더 유명해진 것이다. 카네기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자선사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래서 자선사업에서도 일종의 표준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당대 최고 갑부였던 록펠러조차도 이 분야에서는 감히 카네기를 능가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애는 넘쳐났지만 인간미가 없는 매몰차고 몰인정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평소에 워낙 인색한 성격이었던 카네기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면서 자기 회사 근로자들의 임금인상보다는 차라리 공익을 위한 기부 행위가 더 바람직하다는 식의 지론을 펼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록펠러가 그랬던 것처럼 양 극단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 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록 초등학교 4학년의 학력이었지만 유능한 인재들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았던 리더요 경영자로서 그의 리더십의 핵심은 칭찬이었다. 카네기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 주 태리타운의 슬리피 할로 묘지에 세워져 있는 카네기의 묘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자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 여기 누워 있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카네기1
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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