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의 천기 엿보기] 단종대왕 태실지(上)
[경남일보의 천기 엿보기] 단종대왕 태실지(上)
  • 정영효/이웅재
  • 승인 201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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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국왕, 태실지마저 그 운명따라

단종 태실 비석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다.(왼쪽) 귀부와이수(가운데), 중동석(오른쪽)

 
 
조선 500년사에서 역대 국왕 중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인 단종대왕(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년). 1441년(세종 23) 문종(文宗)과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의 외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1448년(세종 30) 왕세손에 책봉되었고(7세), 2년 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즉시 왕세자가 되었다. 1452년 문종이 39세로 붕어(崩御)하자 단종은 제6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단종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비참한 운명의 국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개국 60년 만에 11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단종은 14세때인 1455년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1457년 6월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寧越)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0월 17세의 어린 나이에 최후를 맞았다. 사후의 처리도 비참했다. 야사에 따르면 시신이 청령포 물 속에 떠있는 것을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해 현재 장릉(莊陵) 자리에 안장했다고 한다.

500여년 전에 비참한 운명을 맞았던 단종대왕의 태(胎)가 묻혀져 있는 태실(胎室)이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산438에 소재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왕의 태실이라고 하면 으례 웅장할 것으로 생각되나 단종대왕 태실은 소박하다 못해 너무 초라해 그냥 지나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세종태실지에서 8시 방향으로 300여m 쯤 떨어진 들판 언저리에 소나무로 울창한 동산이 나타난다. 들판 속 작은 섬처럼 생긴 소나무 동산이 단종대왕태실지(端宗胎室地)다.

세종태실지에서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단종대왕 태실지’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오고 왼쪽 시멘트 농로를 따라가면 작은 개울에 다다르면 ‘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 단종태실지’라는 팻말이 나온다. 팻말이 없으면 단종대왕 태실지라는 사실을 알기 힘들 정도로 작은 태봉이다. 팻말을 따라 오르면 ‘단종 태실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나고, 그 뒤 석등 모형의 중동석과 깨어진 태비신(胎碑身), 귀부와 이수 등 3개의 석물이 서 있다. 이 석물은 뒤편 민묘 앞에 서 있는 석물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비록 비운의 왕이었지만 그래도 왕의 태실인데 백성의 묘 앞에 서 있는 석물 보다 초라하게 방치된 모습은 단종이 당대 뿐만아니라 후대에서까지 대왕의 대우를 받지못하고 있어 안스럽기 그지없다.
 
단종대왕 푯말
단종대왕 푯말


◇태실 현 실태

단종대왕 태봉에는 단종의 태실은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파손되고 깨어진 중동석을 비롯해 귀부와 이수, 태비신 등 석물들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을 뿐이다. 심하게 마모된 태비신에 ‘大王’이라고 새겨진 글자는 이곳이 단종대왕의 태실지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현재 태실은 없어지고, 석물의 위치도 원래의 위치가 아닌 것 같다. 태봉의 전체 형상을 보면 단종대왕 태실은 석물 뒷편 민묘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판에서도 ‘지금은 태실이 있던 자리에 민간인 묘가 들어서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단종대왕 석물들 또한 지금 민묘 앞에 서 있는 석물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묘를 조성할 때 원 위치에서 아랫쪽으로 밀려나 지금 위치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비스듬히 기울어 주저앉은 모습에서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세월의 서러움이 느껴진다. 거북모양 받침에 꽂혀 있었을 비신의 일부만이 땅에 심어져 있는데 그 또한 볼품없기 그지없었다. 영조10년(1734)에 세종태실비와 함께 세워진 단종대왕 태실비는 건립 당시에 비슷한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세종대왕 태실지에 보관돼 있는 세종대왕 태실비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다. 초라한 석물들 앞에 서 있는 안내판만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된 단종 태실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안내판에는 ‘이곳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태가 봉안된 곳이며, 단종이 태어나자 세종대왕이 자신의 태실 앞쪽에 손자의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하면서 조성되었다’고 기술돼 있다. 즉 단종대왕 태실은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의 특별한 손자 사랑으로 조성된 태실이다. 그리고 안내문에는 ‘다만 주변에 흩어진 비석과 조형물들을 통해 이곳이 단종의 태실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종대왕 태실지 안내판
단종대왕 태실지 안내판


◇태실 수난

단종대왕 태실은 세종대왕 태실과 가까운 곳에 자리했음에도 그 규모가 작아 정유재란 당시 왜구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던지 세종태실지가 크게 훼손될 때에도 화를 면했다. 그렇지만 세월의 무게에 따라 자연적으로 훼손돼 여러차례 개보수를 거치기도 했다. 사천문화원이 발간한 ‘세종대왕 단종대왕 태실의궤’에 따르면 영조 6년(1730년)와 영조 10년(1734년)에 단종대왕 태실을 수개(修改)했다는 기록인 ‘의궤’가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영조 6년 ‘옹정 8년 경술 5월 일 경상도곤양지 세종대왕 단종대왕 태실 수개 의궤(擁正捌年庚戌五月日慶尙道昆陽地 世宗大王 端宗大王 胎室 修改 儀軌)’에 따르면 경상감사 박문수가 예조에 올린 장계를 보면 “단종대왕 태실 봉안처에는 지배석과 지대석 사이에 높낮이가 생겨 손상됐다”고 기술돼 있다. 또 “경상도 감찰사 조현명이 곤양에 세종대왕과 단종대왕의 태실을 고치는 날짜를 오는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정했다”는 장계를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

영조 10년 ‘옹정 12년 9월 일 경상도곤양지 세종대왕 단종대왕 태실 표석 수립시 의궤((擁正 十二年九月日慶尙道昆陽地 世宗大王 端宗大王 胎室 表石竪立時儀軌)’에 따르면 “예조에서 여쭙기를 세종대왕 태실의 표석을 세우는 길일은 오는 9월 5일 사시, 단종대왕의 표석을 세우는 길일은 오는 9월 8일 진시인데 먼저 사유제를 고하고, 같은 날 묘시 새벽 후토제를 고하고, 일을 마친 후 사후토제를 행합니다…. 동부승지 송수형이 여쭙고 윤허를 받았다”고 기술돼 있다. 이는 단종대왕 태실이 오랜 시일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훼손돼 영조 6년에 보수됐으며, 영조 10년에는 표석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 단종대왕 태실은 일제에 의해서도 수난을 겪었다. 1929년 일제는 단종대왕의 태실을 경기도 양주(楊州)로 강제로 옮기고, 태실지는 민간인에게 분양했다. 이는 조선왕조의 맥 마저 끊으려는 일제의 만행이었다. 단종대왕 태실지를 분양받은 그는 자신의 묘로 사용했다. 이후 아들과 조카 등은 고위공직과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이는 단종대왕 태실지가 길지 중에 길지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500여년 전에 비참한 운명을 맞았던 단종대왕. 무려 566년이나 지난 지금도 단종대왕은 자신의 태(胎)가 묻어져 있는 태실에서 일제에 의해 쫓겨나고, 땅 마저 빼앗기고, 석물 마저 깨어진 채 나뒹굴고 있는 등 비참한 신세를 맞고 있어 사천에서 다시 비운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재현되고 있다.
단종대왕 태봉과 수로
단종대왕 태봉과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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