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인격과 ‘갑을’ 평등 논의
‘갑’의 인격과 ‘갑을’ 평등 논의
  • 경남일보
  • 승인 201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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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 교수)
2000년 전 동시대에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AD 80년에 인류가 만든 지상 최대의 건축물인 콜로세움이 완공되고, AD 79년에 인류가 경험한 지상 최대의 재앙인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폼페이가 하루아침에 인류역사에서 사라진다. 이 두 사건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천년 제국 로마 정치문화와 경제사회의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사회지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역법 주기(週期)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중 십간에 해당하는 ‘갑’(甲), ‘을’(乙)이 있다. ‘갑’이나 ‘을’은 연도, 방위, 시각 등을 나타낼 때 쓰이는 글자다. 순번의 상황이지 권력관계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갑’과 ‘을’은 대기업 임원이 스튜어디스를 괴롭히고, 호텔 매니저과 빵집 회장, 남양유업 사용주의 대리점 관리행태 설명과정에서 사회지표로서의 적실성과 정체가 드러났다. 여기서 ‘갑’은 상황을 좌우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 ‘을’은 갑의 하위구조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SNS에서 시작된 ‘갑을’논쟁은 부도덕한 갑의 행태를 고발하고 ‘갑’의 각성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우월적 근성의 ‘갑’ 행태는 문제

계급사회도 아닌데 이해관계 당사자를 ‘갑’과 ‘을’로 나눠 신분적 차이를 느끼게끔 하는 지금까지의 ‘갑’의 행태는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를 ‘갑’ 또는 ‘을’이라는 한정된 단어로 구분 짓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한 현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 횡포와 리스크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약자 ‘을’의 반란으로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갑’의 부조리한 행태가 단기간에 그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이라는 계약상 우월적 지위의 이미지는 새롭게 정리되어야 한다. 일단 가시적으로 정부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업체와 근로자를 지칭하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이른바 ‘갑’의 횡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사업체는 ‘갑’, 근로자는 ‘을’이란 인식 자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회 곳곳에 상존해 있던 ‘갑’의 전횡 과정과 ‘을’의 분노라는 ‘갑을’ 논쟁 핵심의 하나는 ‘자본’에 인격을 가르쳐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갑을’관계는 단순히 태도나 준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에게 인격을 가르친다면 ‘갑’과 ‘을’은 평등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을’의 생사 여탈권은 여전히 ‘갑’에게 있고, ‘갑’이 인격을 배운다 해도 그것이 ‘갑을’관계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을’은 ‘갑’을 당해낼 수 없다. ‘을’이 감당해 내기 어려운 부족한 부분은 제도적 보완이나 불매운동 같은 시민운동 같은 사회적 역동성에서 벌충하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 ‘갑’과 ‘을’의 불안한 균형점은 여기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모호하기만 했던 ‘경제민주화’가 ‘갑을’논쟁에서 비로소 개념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경제민주화는 ‘을’이 불평등을 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배려이기 때문이다.

‘을’을 위한 일상의 민주주의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 읽혀지게 되는 것은 시장과 한국 자본주의 봉건성의 기묘한 결합이다. 자본주의나 근대의 형성과 발전을 어떻게 설명하든 봉건적 유산이 곳곳에 남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봉건적 잔재에 익숙해 있는‘갑’은 언제든지 횡포와 사고를 칠 수 있다. 사회·경제적 권력관계에서 불리하고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막말을 듣고 모욕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갑을’ 균형점에 지속적 관심 있어야

‘갑을’의 관계를 넘어 새로운 상호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한때의 여론이나 유행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문서에 ‘갑’과 ‘을’이라는 문구형식만 바꾸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월적 지위 근성이 깔려 있는 ‘갑’보다 ‘을’에게서 창조경제의 화두인 창의성이 나와야 한다. 다수인 ‘을’이 억압받는 사회에서 창의성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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