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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를 한 눈에 담아 오다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54> 재약산 천황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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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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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의 종착지 천황산과 재약산, 취재팀은 운문산<52>을 시작으로 가지산<26>간월·신불산<53>을 거쳐 이번 산행으로 영남알프스 4개산을 마무리한다.

천황산을 비롯, 영남알프스는 억새와 늪의 고향이다. 바람에 억새술 흩날리는 늦가을에 이곳을 찾아야만 제격일진대, 이 계절의 산행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실시한 산행임을 뒤늦게나마 일러둔다./편집자 주



# 천황산(1189m)은 국내최고의 억새평원이자 ‘삼남금강’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사방 조망권을 갖고 있다. 늪과 폭포, 고찰 표충사가 포인트다.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가 된다.

등산객들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천황산 남쪽의 재약산, 두개의 산을 동시에 산행한다. 천황산이라는 이름은 일제 때 우리지명을 말살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해 최근 천황산을 재약산으로 부르자는 운동이 있었지만 실상 일제시대 이전부터 천황산으로 불렀다니 천황이란 말에 그리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리하면 천황산의 최고봉은 사자봉, 재약산의 최고봉은 수미봉이라고 보면 된다. 서쪽 산기슭에 있는 고찰 표충사는 원효대사가 삼국 통일을 기원하며 터 잡았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곳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다. 천황산 북쪽 사면에는 단열냉각에 의한 물리적 현상으로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있다.(천연기념물 224호)

특히 여름산행의 참맛인 폭포를 많이 갖고 있다. 최고의 폭포는 재약산 8부능선에 있는 20m짜리 층층폭포, 산꼭대기에 있어서 하늘의 폭포로 부름직 하다. 천황산 쪽에 있는 금강폭포와 이 일대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물은 여름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청량제다.

#산행은 표충사→층층폭포→사자평 억새밭→재약산(수미봉)→천황산(사자봉)→한계암→금강폭포→표충사로 회귀했으며 12km에 6시간 30여분이 소요됐다.

#들머리는 표충사 오른쪽 계곡이다. 피라미가 노닐 정도로 계곡의 폭이 넓고 등산로도 매우 넓다. 주의 할 것은 이정표가 잘 돼 있지 않다는 점. 표충사에서 등산로에 내려 걷다가 오른 쪽에 있는 계곡을 한번 건넌 뒤 15여분 뒤에 다시 왼쪽 계곡을 건너 산사면의 길을 따라 된비알을 타면 된다. 즉 두번째 계곡을 건너기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 좁은 산길에 접어들면 안 되고 계곡을 건너가야 흥룡폭포 층층폭포로 갈 수 가 있다.

1시간 40여분 만에 20m높이의 명품 층층폭포에 닿는다. 산의 8부 계곡에 있는 폭포인데 수량이 일정한 것은 사자평원의 이탄층이 머금었던 물을 서서히 내려보내기 때문. 폭포를 뒤로 하고 재약산쪽으로 오르면 작전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걷다가 다시 오른쪽 재약산 방향에 붙으면 데크로 된 나무계단이 400m이상 이어진다. 지루한 계단을 올라 끄트머리에 서면 이때부터 그늘이 별로 없어 뙤약볕이 쏟아지는 길, 울퉁불퉁한 상부영역이다. 정상에 다다를 즈음 땅속에서 용솟음 친 바위 형상이 마치 불꽃을 닮았다.

#고사리마을은 50∼60년 전 11여가구 35여명의 주민들이 화전을 일궈 살았다. 지금은 모두 떠나고 흔적만 남았는데 당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고사리학교터가 남아 있다. 옛날 신문에 난 일화 하나. 돈 많은 독지가가 이 학교 아이들을 위해 천체망원경 한대를 기증했다. 그런데 정작 등산객이나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이 빛나는 밤이면 이곳에서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을 관찰하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상상해 보라. 도시에 살면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이 산에 들어와 별을 구경하는 풍경이라니. 시골 아이들의 삶이 그다지 호사롭지는 못해도 산꼭대기에 살면서 꿈을 키웠을 그들이 부럽지 않은가.

#2시간 30여분만에 재약산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재약산∼천왕산은 주변 산들의 진산. 진산을 만끽하고 걷고 있는 한 무리 등산객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재약산은 신라때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화랑도가 호연지기를 길렀다.

고도를 낮추면서 천왕재에 내려선다. 천왕재 일대 ‘산들늪’이 볼거리다. 고산 습지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경관을 보전하고 있다. 수만년 동안 형성된 이탄층과 습지에는 지표종 진퍼리새 오리나무 복주머니난 등 보호가치가 높은 식물이 자생한다. 사자평원 2007년에 ‘꼭 보전해야할 한국의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천왕재에서 30여분이면 천왕산에 닿는다.

우리나라 산 중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산이 몇개나 될까. 남으로 향로산 금오산, 동으로는 간월 신불산 영축산, 북으로는 운문산 억산 가지산,서로는 영취산이 에워싸고 있다.

해인님이 쓴 ‘불혹의 산과 여행’에 나오는 산에 관한 주옥같은 말로 정상에서의 상념(想念)을 대신한다.

/다만 해맑은 햇살에 싱그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한그루 나무되어 서 있을 뿐이다/뾰족한 바위 굽이진 계곡/이름 모를 잡초/우거진 나무/둥이 진 산새/산족/산짐승/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야생화들이 서로 달라도 누구하나 다투거나 원망하지 않은 채 포용하며 공존이라는 운명의 공동체로 살아 간다/(중략)산은 오직 푸르름 속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면 찬이슬로 목마름을 적셔주고/허기진 산짐승들에게 열매를 어여쁘게 내주지만 생색을 내거나 자랑치 않는다/산은 모든 것을 감싸는 힘이 있다/말이 없는데도 산에서의 샘물은 갓 태어난 어린 시절의 순백한 맑음을 느끼게 한다/

하산길은 표충사쪽 4.4km에 1시간 30분이 더 소요된다. 한계암 옆 금강폭포는 산행객의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표충사 삼층석탑은 높이 7.7m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해체 보수 했다. 상륜부 찰주, 지붕 모서리에는 풍탁(풍경)을 다는 구멍이 있다.

경내에 ‘영정’이 있다. 신라 흥덕왕 때 세째 왕자가 병으로 고생하다가 이 샘물을 마시고 완쾌 했다. 왕은 이후 ‘신령스러운 우물이 있는 절간’이라는 뜻으로 영정사로 바꾸게 했다. 발원지는 산마루 천황재 산들늪.

#표충비는 왜 표충사에 없을까. 국난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표충비는 사실 표충사에 없다.

밀양에서 출생한 응규는 출가 후 고향 밀양 무안면 웅동리 앞산에 난야 암자를 짓고 여생을 보내려한다. 그러나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국정에 전념하다 낙향해 1610년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했다. 8년 후 문도들이 뜻을 모아 난야 암자를 표충사로 개명, 산사를 열었다. 이어 1742년 사명대사 영당비 표충비를 세운다. 그런데 갑오개혁, 동학농민, 조선독립 때 이 비가 땀을 흘려 명성을 높인다. 그러나 표충사가 쇠락하면서 표충사의 명맥은 일단 거기서 멈춘다. 대신 표충사라는 이름은 영정사로 자리가 옮겨지 현재의 표충사가 된다. 영정사가 표충사로 바뀐 것이다. 즉 쇠락한 표충사명은 옮겼지만 현재 무안면 웅동리에 있는 표충비는 무암면 무안리의 표충사로 따라 오지 못했다. 표충비와 표충사가 백수십년동안 40km의 거리를 두고 헤어진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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