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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의 의미를 새기며 사회 통합을 생각하자김선우(진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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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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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가이자 유명한 웅변가인 잉거솔(Robert Green Ingersoll)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바로 미국의 영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 영웅은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우리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땅에서, 장엄한 소나무 밑에서, 눈물 글썽이는 수양버들 밑에서 잠들었습니다. 지구는 또 다른 전쟁 때문에 선혈로 물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화 속에 있습니다.”

오직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영웅이다. 이름을 떨친 군인이나 민간인은 물론 무명용사들도 많다. 사실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의 대가를 지불해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가 국립묘지를 조성하거나 현충일을 제정해 순국선열의 충절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과 대전의 27만 여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국립묘지는 조국과 운명을 함께할 불멸의 성지인 셈이다. “겨레와 나라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우리가 잘 아는 현충일 노래의 한 구절이다.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6월은 많은 장병이 호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6·25전쟁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56년 제정 당시 망종(芒種)인 6일을 현충일로 정한 것이다. 1년 중 손이 없다는 청명(淸明)과 한식에는 벌초와 성묘(省墓)를 하며,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는 옛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현충일 노랫말과 함께 10시 정각의 사이렌 소리에 맞춰 올리던 님들을 향한 묵념도 점점 잊혀지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다, 기성세대들조차 단순히 ‘노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니 선열들을 뵐 면목이 없다. 이런 세태이니 현충일이 무슨 날이라 조기를 달고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을 기리겠는가. 더욱이 해마다 느끼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충일 추모식장에는 추모식 관련 기관단체장과 정치인, 보훈단체장, 상이군경과 전몰군경의 유족 등 대부분 70, 80대의 백발이 성성한 보훈대상자들만 참석을 하고, 진정 이들에게 감사를 하고 호국영령들을 추모해야 할 일반 국민들의 자발적 참석은 매우 드물다. 정치인들이나 가끔 보게 되는 일반인들조차 잠깐 둘러보고는 행사 중에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여행지라도 온 듯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가 하면, 경건해야 할 의식 중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청소년들의 안이한 역사인식과 기성세대들의 분별없는 행동은 모두 보훈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공휴일 하루를 쉬며 심신을 충전하는 것까지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날 만큼은 나라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선열들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것이 마땅하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고귀하다. 그 목숨을 겨레와 나라 위해 바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숭고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조국 수호를 위해 이름 모를 들녘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예우하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인 것이다.

반쪽 행사에 그친 5·18 33주년 기념식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슬프고 착찹하다. 좌우의 이념에 의한 갈등은 시공을 초월해 그 존재를 인정한다 해도,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시키는 안타까움은 이념, 지역, 계층, 세대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갈등이 일상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은 실질적인 민주화와 통합 노력이 아직은 불충분함을 보여주는 징표일 것이다. 개인의 파벌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의식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가 국익을 위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도 변화하는 세계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진보와 보수, 영호남, 그리고 세대 간 모든 세력의 성찰과 화해를 전제로 진정한 사회 통합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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