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시인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51)<12>허영자 시인의 초등학교 시절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7.20  16:46:0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강희근 시인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 (251)
<12>허영자 시인의 초등학교 시절 
 
오늘은 허영자 시인이 들려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한 토막을 기록해 볼까 한다. 허시인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릴 때부터 동시 짓기와 책읽기에 푹 빠져 있었다. 4학년 때 일이었다. 허시인의 담임 강선생은 퍽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분이었다. 어린이들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기울였었다. 일요일에도 자기 반 어린이들을 학교에 나오게 하여 그림도 그리게 하고 동시를 쓰게 하기도 했다. 특이했던 것은 아이들이 쓴 동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 하고 좋아했다. 일요일에 학교에 나가는 일은 행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어느날 그 선생이 동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셨다. 그때 허영자 어린이에게는 한 동네 사는 P라는 친구가 있었다. P는 늦게 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허영자보다 두세살 위였다. 그런데 P와 허영자는 한 동네에 산다는 것 외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절친한 사이였다. P는 언니처럼 허영자를 돌보았고 자기보다 훨씬 책 읽는 속도가 빠른 허영자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책을 돈 받고 빌려주는 가게에서 책을 빌려오면 허영자는 하루만에 읽는 것을 P는 이틀이나 사흘 걸려 읽었기 때문이다.

그 P가 선생의 동시 숙제가 부담스러워 허영자에게 숙제를 하면서 P의 것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허영자는 그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허영자는 그후 스스로의 것으로 낸 동시 제목은 잊었지만 P의 것으로 쓴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P작품으로 써준 제목은 ‘아버지’였다. P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에 허영자는 P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써준 것이다.

숙제를 낸 다음날이었다. 선생은 P를 앞으로 부르셨다. “이 동시 네가 썼느냐?”고 물었다. 어린이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며 귀를 모았다. 특히 허영자는 P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조마조마하였다. 고개를 숙인 P는 “네”하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은 “에끼 이놈! 거짓말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허영자는 거짓말을 하는 P에게 실망을 할 틈도 없이 선생의 혜안에 감탄을 하였다. “과연 선생님은 선생님이시다. 어떻게 P가 안 쓴 것을 알아맞히신단 말인가.

그러나 허영자는 다음 순간 더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선생이 “너 거짓말 하면 못 써.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이런 글을 썼을 리 없어.”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P는 무척 당황하며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선생님, 이 글 제가 안 쓴 건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쓴 건 틀림없어요.” 라 말했지만 선생은 “에끼 이놈! 자리로 돌아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P는 더 이상 아무말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허영자는 이때 너무나 실망을 했다. P가 안 쓴 것을 알아 맞히신 선생님이 어찌 그 글을 4학년짜리가 썼다는 것을 모르신단 말인가. 선생님 같으신 분이 몰라주신다면 그 누가 알아줄 것인가.

허영자는 그때 열한 살짜리로 어렸지만 글 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더욱이 그 글의 진가를 세상에서 인정받기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 결국 글쟁이나 예술가란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뒤 훨씬 시간이 흐른 뒤 미당(未堂)의 ‘나의 시’를 읽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절실하게 공감하였던 것은 어린 날의 작은 체험에서 받은 상처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미당의 ‘나의 시’를 옮겨본다.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 안 동백나무 꽃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홍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주워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 쉬임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 내가 주워 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 손에서 땅 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