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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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 삶의 파도를 만났을 때, 그 파도 속에서 황급히 벗어나려 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닻을 내리고, 그 파도소리에서 이 소리가 내게 가르쳐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 소리를 통해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잠잠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고즈넉한 여유를 지닌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또 그 파도소리에서 그동안 소홀해 왔던 내 주변에 닻을 내린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 낮게 낮게 밀물지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썰물이 빠지고 난 자리에 여기저기 구멍 난 진흙더미들이 흉하게 드러난 것처럼, 파도치고 바람 부는 날 마주한 사랑하는 이의 모난 자리와 상처들을 밀물처럼 잠잠하게 쓰다듬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또 그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낮아지고, 밀물처럼 진흙더미의 비어진 자리 위를 오롯이 덮으며 완전해지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을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가을에야 느지막이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팬지에게 나는 왜 너처럼 봄에 피지 않느냐고 묻지 않듯이, 남의 인생의 꽃이 먼저 피었다고 조바심내지 않고 내 인생의 꽃은 언제 피느냐고 불평하지 않고, 너의 꽃은 네 꽃이 필 차례에 반드시 피울 것이라는 삶의 이치를 담담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또 꽃이 빨리 보고 싶어서 꽃씨를 열어본 어린아이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내 꽃이 필 차례가 내 앞에 있음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더 흘러 모두를 다시 만난다면, 한명 한명의 손을 잡고 너의 꽃이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이예준 (지리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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